시나이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같이 걷던 수녀와 일출을 보면서 느낀 이야기를 나누느라고
일행과 간격이 제법 벌어졌다.
허름한 옷을 입은 이집트인이 산에서부터 계속 간격을 두고 뒤떨어진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는데
그는 모이세가 우리를 위해 고용한 현지가이드였다.
그에게 손짓으로 시나이 산에서 바라보이는 맞은편 산 중턱쯤에 있는 작은 건물이 무엇인가 물었더니
그곳도 수도원이라고 했다.
그가 우리에게 뭔가 내밀었다. 아주 예쁜 수정 돌이었다.
또 돈을 요구할까 봐 받기를 주저했더니 함께 가던 수녀가 얼른 손을 내밀어 그것을 받았다.
그는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는 입고 있던 파카를 벗어 하산 길에 만난 이집트 소년에게 주었다.
가타리나 수도원이 보이는 곳까지 내려오자 새벽에 낙타를 타던 장소를 알아볼 수 있었다.
새벽 일찍 일하고 내려온 낙타 몇 마리가 낮은 돌 울타리 안에 앉아 있었다.
수도원 입구에서 자매들이 수도원에 들어갈 차례를 기다리며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현존하는 성경 가운데 가장 오래된 필사본 중 하나로 알려지는
‘코덱스 시나이티쿠스’(Codex Sinaiticus·시나이 사본, 1600년 전, 고대 그리스어로 송아지 가죽에 써졌음)가 발견된
그 유명한 성가타리나 수도원의 돌담은 커다란 성채처럼 높았다.
시나이 산을 등지고 해발 800m 고지에 위치한
에르하라 평원에 있는 이 수도원의 이름이 된 성녀 가타리나는 콥트교회의 순교성인이다.
전승에 의하면 250년경에 태어난 카타리나는 알렉산드리아의 귀족 출신으로 본명은 도로테아였는데,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면서 카타리나라는 세례명을 받고 수도 생활을 하다가
막시미아누스 황제(286∼305) 때 순교했다고 한다.
그녀의 시신은 천사에 의해 시나이 반도 제일 높은 곳으로 옮겨졌다고 하는데
그 이후 시나이 산 수도원이 성가타리나 수도원으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수도원 건물은 콘스탄티누스대제의 어머니인 성녀 헬레나의 지시로 AD 337년 세워진 것으로
오늘과 같은 모습으로 완성된 것은 AD 557년이라고 한다.
우리 차례가 되어 수도원으로 들어갔더니 좁은 입구부터 이콘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곳을 지나 입구부터 향내가 진하게 풍기는 성당에 들어가니
검은 모자와 수도복을 입은 정교회 수사님이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성당 내부는 아담했는데 성당을 다 뒤덮을 정도로 다양한 이콘들로 꾸며져 있었다.
성당 내부의 이콘들은 비잔틴 미술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는데
그 많은 이콘들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한 채 그냥 둘러보기만 하고 나와야 했다.
이곳을 방문하기 전에
성당 안에 있는 이콘들에 대한 정보를 더 상세히 알고 왔었다면 좋았을 것이었다.
이외에도 이 수도원에는 3,000여 점의 고대 성경사본과 5,000여 점의 고대 문서들을 소장하고 있는데
로마 바티칸 교황청 도서관 다음으로 많은 성경사본을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수도원 안의 좁은 길을 돌아가니 막다른 곳에
모세가 광야에서 하느님을 만났을 때 보았다는 (탈출기 3장) 불타는 떨기나무가 있었다.
나무의 뿌리는 수도원 건물 안에 있고 묵은 가지를 단정하게 쳐낸 가지와 잎사귀를 볼 수 있었다.
먼저 그곳에 도착한 사람들이 그 나무 잎사귀를 바라보고 만지고 있었는데
우리가 다가가자 웃으면서 자리를 비켜주었다.
떨기나무의 잎사귀가 꼭 산딸기 잎처럼 생겼다.
이 떨기나무는 시나이 반도에서만 자라는 품종이라고 한다.
나도 그들처럼 까치발을 들고 산딸기 잎사귀 같기도 한 떨기나무 잎을 만져보았다.
모세가 보았을 불길은 이 푸른 잎사귀를 다치지 않고 타올랐을 터이다.
떨기나무를 보고 나오는 데 있는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우물에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수도원 안에 순례자들의 통행이 허용되는 곳은 적었다.
본 건물을 둘러싼 작은 공간을 지나 성당을 둘러보고 나오게 되어있었다.
종탑 안쪽으로 난 문을 통해야 수도자들이 거주하는 곳과 도서실 등으로 연결되는 것 같았다.
외부인들의 출입이 통제되는 내부의 규모가
아마 순례자들이 볼 수 있는 곳보다 몇 배는 더 클 것이라고 짐작되었다.
우리는 다시 호텔로 돌아와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이스라엘 국경으로 출발했다.
버스는 우리를 아카바 만에 인접한 해안도시인 누에바라는 마을에 있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정식집으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떡국으로 점심을 먹었다.
점심 후에는 잠시 거리를 산책할 시간이 있었다.
깨끗하게 포장된 도로 양편으로 종려나무가 시원하게 뻗어 있었다.
반대편으로는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크고 고급스러운 주택들이 있었다.
새로 개발되는 도시였던 것 같다.
염소가 새끼를 줄줄이 데리고 널찍한 포장도로를 건너오는 것이 재미있었다.
속절없이 예뻤던 부겐빌레아. 우린 그곳에서 잠시 여유 있는 시간을 즐겼다.
그런 다음 다시 버스를 타고 달리는 옆으로 푸르고 맑은 홍해가 이어졌다.
맑은 바다를 끼고 있는 지역이라 그런지 리조트 같은 휴양시설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이집트를 벗어나 이스라엘로 들어가는 관문인 타바국경.
이스라엘국경을 넘을 때는 검문이 까다롭다면서 안내자는 우리에게 꼼꼼하게 주의를 주었다.
모이세는 여행사에서 출발할 때 받은 연둣빛 스카프를 모두 목에 둘러
한 눈에 단체임을 알아보게 했다.
또 다른 스케줄이 있던 모이세는 우리를 그곳에 두고 이집트로 돌아가야 했는데
며칠 사이에 정이 들어 헤어지는 것이 섭섭했다.
우리는 푸르디푸른 홍해를 바라보며 통관절차를 기다렸다.
우리가 앉아 있는 길 건너편으로 보이는 험하고 급한 경사를 이룬 언덕 위로
이집트와 이스라엘국경을 가르는 철조망이 서 있었다.
철조망을 사이로 이집트는 메마른 사막처럼 헐벗고 시든 식물들이 있는 반면에
이스라엘에 속하는 언덕은 녹색 풀로 덮여 있었다.
아마도 땅 아래에 관개시설을 설치한 것 같았다.
이스라엘 쪽의 언덕의 철조망 부근에는 사슴 모양의 표지판을 세워 놓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내 마음에 아가서의 구절이 떠올랐다.
‘주님은 사슴처럼 나를 뛰게 하시네.’
모든 삶의 바탕이 성경으로 이루어진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경계를 위해 설치해 놓은 조형물이었을 텐데
나의 상상이 지나쳤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거의 한 시간이 넘도록 통관절차를 시작하지도 못했다.
겨우 절차가 시작되었는데 우리 뒤에 있던 아랍인 가족에게 순서를 양보한 것이 실수였다.
그들은 이삿짐을 가지고 있었는데 원래 아랍인들과 사이가 좋지 않은 이스라엘인들이
일부러 시간을 끌며 그들의 짐을 꼼꼼히 검사 하는 바람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던 것이다.
마침내 우리 차례가 왔다.
나도 어떤 트집이 잡히지 않을까 겁을 먹고 통관 대에 짐을 올려놓았는데
일행 중 첫 번째로 통과되어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특히 통관절차가 남자들에게 까다롭다고 주의를 받았기에
우리 모두 신부님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면서 계속 기도했다.
그 때문인지 신부님은 너무 쉽게 통관이 되었고
오히려 다른 자매들을 기다리느라고 시간이 걸렸다.
결국, 한 시간 반이나 지나서 모두 이스라엘 쪽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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