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해로 이동했다.
갈릴래아 호수의 물은 요르단 강으로 흘러가 유대광야를 거쳐 사해(死海)에 도착한다.
사해는 지표 400m 아래에 자리하고 있으며 남북의 길이가 77㎞,
동서 최대의 폭이 16㎞, 전체 면적이 9백65㎢이며 갈릴래아 호수 넓이의 6배나 된다.
수심 4백20m나 되는 사해로 매일 평균 500만 톤의 물이 요르단 강으로부터 유입된다고 한다.
사해 지역의 기온이 워낙 높아서 요르단 강에서 들어오는 양만큼의 물이 계속 증발하지만
다른 곳으로 나가는 물이 없기 때문에 항상 일정한 수위를 유지한다고 한다.
사해의 물은 일반 바다보다 염도가 7∼8배나 높아 (염분이 30~33%) 어떤 물고기도 살 수 없는 곳이다.
나눌 줄 모르면서 받아들이기만 하는 이기심이 죽음의 바다를 (死海)를 만들었을 테다.
염화칼슘, 쏘디움, 포타슘, 미네랄, 마그네슘, 유황, 칼슘, 우라늄, 브로마인 같은 광물질이
무궁무진하게 함유된 사해의 진흙은 이스라엘의 주요 수출 품목이라고 한다.
우리는 바닷가로 내려갔다. 아득히 펼쳐진 바다 건너편으로 요르단 땅이 보였다.
모래사장에서부터 진회색의 미끈한 흙이 밟혔다.
이집트의 여왕이었던 클레오파트라도 이 사해 진흙으로 아름다움을 유지했을 만큼
바다 주변과 물속에 지천으로 깔려있는 검은 진흙은 미용효과가 좋은 광물질을 함유하고 있다고 한다.
축축하면서도 찬바람이 부는 바다에서 몇몇의 사람들이 수영하고 있었다.
우리도 신을 벗고 출렁거리는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아무리 추워도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다는 사해지만 겨울철이라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발을 물에 담근 채 손으로 진흙을 잡아 문지르며 장난을 치는 우리 모습을
유대인 할아버지 한분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바닷물에서 나온 우리는 맨발로 샤워시설이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자매들은 서로 발을 씻어주면서 계속 장난을 쳤다.
모두들 중년이 가까워 오는데 노는 걸 보니 아직 아이 같다.
출렁대는 푸른 물결로 봐서는 여느 바다와 다를 바 없는데 바닷물에 닿은 옷이 금새 뻣뻣해진걸 보니
사해의 염분이 얼마나 강한지 실감났다.
우리는 이름 모를 꽃들이 가득 피어 있는 바닷가 휴게실을 벗어나
해변을 끼고 남쪽으로 5㎞쯤 에 위치한 쿰란 국립공원 지역으로 이동했다.
우리는 관광품 판매점 앞의 주차장에 차를 내렸다.
쿰란 유적지는 관광품 상점을 통과하는 천장이 낮은 건물이었다.
그곳에서 쿰란의 유래와 쿰란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던 에세네파의 생활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를
한국어 더빙으로 보고 들을 수 있었다.
비디오에서는 예수님이 오실 길을 닦은 세례자 요한을
쿰란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살던 에세네파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었다.
기원전 1세기경부터 이곳 쿰란 지역에서 임박한 종말을 기다리며
세속과 떨어져 철저하게 신앙을 지키며 살았던 에세네파들은
유대교의 분파에서도 가장 경건하고 엄격한 집단이었다고 전해진다.
성경에서도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살며 벌꿀과 메뚜기만 먹고 살았다고 표현(마르코 1, 6)하고 있다.
에세네파 공동체의 유래와 이 지역에 자리 잡게 된 유래, 주거생활, 기도, 성경 필사 작업 등,
그 중에서도 목욕탕의 구조와 사용법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목욕을 계단을 따라 물속으로 들어가 잠겼다가 건너편 계단으로 올라오는 의식으로 행하여
죄에서 죽고 다시 사는 매일의 전례를 거행했다.
오늘 우리의 세례성사에 도입된 의식을 매일의 일상에서 실행하며 살았을 그들의 경건한 신앙심을 짐작할 수 있었다.
비디오를 본 다음 쿰란 유적지에서 발굴된 두루마리 성경과 그릇들이 전시된 작은 전시장을 둘러보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갑자기 가슴이 다 뚫리도록 널따란 황무지에 솟은 암벽이 우리를 맞이했다.
하얀 석회 빛을 띤 바위산 중턱 여기저기에 자연동굴이 뚫려 있었다.
그 유명한 “쿰란 사본”이 발견된 동굴이 있는 곳이다.
68년경 유대인 반란을 진압하던 로마군대가 이 쿰란 공동체로 쳐들어오자 그들은
두루마리에 필사한 성경과 율법서 들을 질그릇 항아리에 넣어 공동체 맞은편 산에 있는 여러 동굴에 숨겨 놓았다.
그 이후, 에세네파 사람들은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그들이 숨겨 놓은 사본들은 1900년 동안 동굴 속에 잠들어 있었다.
그러다 1947년 어느 날 잃어버린 양을 찾아다니던 베드윈족의 양치기 소년이
언덕 위에 있는 동굴에 숨겨져 있던 항아리 속에서
고대 히브리어로 쓰인 구약성경 필사 두루마리를 발견한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이어서 1949년 2월, 학자들은 쿰란 공동체가 살았던 유적지를 발굴했다.
그리고 처음 사본이 발견된 동굴 주변에 있던 267개의 동굴을 탐사했는데
그중 동굴 11개에서 사해사본의 일부인 구약성경의 필사 두루마리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동굴들은 쿰란 공동체의 주거지역에서 125m에서 1km 거리에 있다.
쿰란이라는 말은 ‘두개의 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도 하지만 정확한 뜻은 아직 알 수 없다.
흔히 사해사본과 쿰란 사본을 혼동해서 사용하는데 사해사본은 사해 주변에서 발견된 모든 사본을 말하는 것이고,
쿰란사본은 쿰란 공동체 근처 11개의 동굴에서 발견된 사본만을 지칭한다.
그러니까 쿰란 사본은 사해사본의 일부인 것이다.
쿰란 공동체의 주거지유적 터 앞쪽으로 맑고 푸른 사해가 보인다.
뒤편으로는 깊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하얀 암벽 산과 그곳에 뚫린 자연동굴이 바라다 보였다.
그중에서도 우리 눈에 잘 띄는 동굴이 두루마리 문서가 발견된 순서로 제4 동굴이라고 한다.
퇴적화 된 암벽 산은 만지거나 밟기만 해도 굵은 모래처럼 부서져 내릴 것 같았다.
풀 한 포기 없는 이런 곳에서 어떻게 양을 칠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긴 베두인 목동은 잃은 양을 찾으러 여기까지 왔다고 했지.
돌산 너머에 있는 풀밭에서 건너왔던 모양이다.
공동체 유적 터 사이로 나무로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가면서
복잡한 구조의 방과 가구와 기도실, 목욕탕, 개인침실, 공동식당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물을 저장했던 물탱크, 도기가마, 하수도가 발굴되어 있었다.
그중에 두루마리 성경을 필사하고 보관하던 서고 자리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광야에 속하는 지역 특유의 한적함과 이국정서를 듬뿍 담은 쿰란의 너른 풍정이 마음을 끌었다.
이천 년 전에는 더욱 고요했을 이곳에서 하느님만을 바라며 살았던 에세네파 사람들의 생활을 상상했다.
나도 이런 곳에서 기도만 하면서 살고 싶기도 했지만, 외적인 고요가 내면의 소음을 잠재울 수는 없을 것이다.
성화의 삶이란 장소나 환경보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이니
어디서든 하느님을 중심으로 사는 삶의 태도를 지니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유적지를 둘러보고 돌아오는데 안내자가 마른 나뭇가지에 달린 열매를 가리켰다.
그 열매가 바로 루카 복음에 나오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의 둘째 아들이 먹으려고 했던
쥐엄나무 열매라고 했다.(루카 15,16)
거칠고 시꺼먼 것이 돼지도 먹기 힘들 것 같은 열매로 배를 채우려고 했을 둘째 아들의 불쌍한 처지가 짐작되었다.
이곳 관광상품점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상품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사해진흙을 원료로 한 화장품이 유명한데
매장은 온통 한국 아줌마들로 북적거렸다.
우리도 값싸고 좋은 선물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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