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예수님의 탄생기념성당이 있는 베들레헴에 도착하여
먼저 성모 수유 동굴(The Milk Grotto) 성당을 찾아갔다.
정문 위에 성모님께서 아기 예수님을 안고 젖을 먹이는 성상이 있는 성당으로 들어서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계단 벽에는 성가정이 이집트로 피난하는 모습과 젖을 먹이고 계신 성모님 상, 가브리엘 대천사상 등이 놓여있었다.
전승에 의하면 이곳은 성가정이 이집트로 피난하면서 잠시 머물면서
성모님께서 갓 난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고 젖을 먹이셨다는 장소이다.
동굴은 전체가 하얀색이었는데 그 이유는 성모님이 아기 예수님에게 젖을 주다가
한 방울이 동굴의 돌 위에 떨어졌는데 그때 갑자기 동굴이 하얗게 변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우유 동굴 성당’이라고 불린다는데
개인적으로는 성가정의 신비를 너무 미화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성당은 종교를 초월하여 어머니의 모성을 보여주는 장소로 사랑받는다고 한다.
이 동굴을 순례한 많은 불임 여성들이 아기를 낳은 다음 봉헌한 기도문과 예물을 보관하는 장소가 있었는데
나이 드신 프란치스코회 수사님이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다양한 봉헌물들을 가리켜 보였다.
수유동굴에서 5분정도 걸어서 예수님 성탄 성당으로 이동했다.
예수님 성탄 성당으로 들어간 우리는 성당 옆의 수도원 회랑을 따라 성 가타리나 성당이 있는 곳으로 갔다.
가타리나 성당의 지하에 있는 예로니모 성인(St. Jerome 347-420년 )이 사시던 동굴로 간 것이다.
예로니모 성인은 평생을 예수성탄 성당 옆에 있는 동굴에 살면서
4세기경까지 히브리어 성경만 있던 〈구약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셨고
베들레헴에 수도 공동체를 세우셨다고 한다.
예로니모 성인이 사시던 동굴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갑자기 주위가 깜깜해졌다. 전기가 나간 것이다.
어둠 속에 어리둥절하게 서 있는 우리에게 누군가 불 켜진 초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초를 들고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가는 자매들의 움직임이 동굴 벽에 신비스런 그림자로 비쳤다.
오래된 토굴은 안쪽으로 이어졌다.
곳곳에 성모 마리아의 배필인 요셉 성인께 봉헌된 제대와 무죄한 어린이들의 제대,
그다음으로 예로니모 성인의 무덤 제대가 나타났다.
특히 성인의 무덤 제대 위 벽에 걸린 십자가가 마음을 끌었다.
그다음 동굴은 예로니모 성인이 성경을 번역하고 기도생활을 하던 서재로
벽에는 천사가 예로니모 성인에게 지혜를 전해주는 벽화가 있다.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한 작은 창도 있었는데 그 창은 하늘이 보이는 밖으로 통하는지 궁금했다.
그동안 예로니모 성인이 히브리말 성경을 라틴말로 번역한 불가타 성경을 만드신 분인 것은 알았지만
이곳 예수님 성탄 성당 옆 동굴에서 사신 것은 처음 알았다.
평생을 예수님 탄생지 옆, 동굴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과정이 거의 고행에 가까운 삶이 아니었을까. 예수님과 말씀에 대한 예로니모 성인의 단순하고 숭고한 열정이 내 안에서 일어나기를 기도하게 되었다.
이외에 386년부터 베들레헴에 정착하여 예로니모 성인을 물심양면으로 도우며 수도생활을 했던
바울라 성녀(St. Paula)와 바울라의 딸 에우스토키움 동정 성녀에게 봉헌된 제대가 있다.
이 바울라 성녀는 우리가 방문한 수유 동굴의 성당을 지은 분이라고 한다.
이 모든 것이 동굴 안에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러면 4세기경에는 이 지역이 광야요 동굴 지역이었을까?
어두컴컴한 동굴에서 옛 성인들의 흔적을 더듬다가 밝은 지상으로 올라오니 마치도 한순간 꿈을 꾼 것 같았다.
우리는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가타리나 성당의 경당으로 갔다.
아치형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 작은 경당은 우리 일행으로 꽉 찼다.
이곳에서 우리는 사순절의 첫 주간 미사를 드렸다.
복음은 세례를 받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는 장면이었다.
유혹은 시련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싶다.
내가 가야 할 목적지와 추구해야 할 본질을 더욱 선명하게 밝혀주는 시련의 다른 이름.
신부님은 강론을 통해 ‘순례의 감동이 무디어지지 않도록’ 하라고 하셨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보느라 예수님의 역사적 현존과 가르침을 잊고
단순한 여행자가 될 위험을 다시 상기시켜 주신 것이다.
신부님의 말씀대로 이 은총의 땅에서 걷고 숨 쉬는 복된 순간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을 추슬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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