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순] 예수 성탄 성당

미사를 마친 다음 다시 예수 성탄 성당으로 돌아 오기 위해 아르메니아정교 수도원 회랑을 지났다.

오래된 전통이 배어나는 수도원의 정취가 깊게 묻어나는 회랑을 걷는 것이 좋았다.

돌로 지은 오래된 건물로 지금도 수도원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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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박하고 거대한 석조건물인 예수 성탄 기념성당의 건물 정면은

3개 수도원(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 프란치스코작은형제회)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성당 정면에 원래 있던 세 개의 문중 두 개는 막아 버리고 가운데 문만을 남겨 놓은 흔적이 보인다.

우리가 드나드는 현재의 문도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두 번이나 크기를 줄였기 때문에

성곽과 같은 거대한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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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굽혀야 들어갈 수 있는 낮고 좁은 문을 통해 들어간 성당 안은 운동장만큼이나 넓게 느껴졌다.

높은 천정 양편의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돌기둥에 부딪히며 성당 내부로 쏟아지고 있었다.

여기저기 여러 나라의 순례자들이 많았지만, 성당이 너무 넓어서 그런지 하나도 복잡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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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 성녀가 예수님이 탄생하신 동굴 터에 처음으로 성당을 지은 이래

이곳은 수많은 역사가 덧칠해졌다.

성녀가 324년에 지은 성당은 대지진과 사마리아인들의 폭동 때에 불타버리고

우리가 순례하는 현재의 성당은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531년에 지어진 것이다.

성당 안에는 헬레나 성녀 시대의 모자이크 조각들이 성당 바닥에 남아있었다.

성당을 등분하는 40여 개의 돌기둥의 위편에는

동양화 같은 느낌이 드는 십자군 시대의 무채색 모자이크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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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삼나무를 손으로 깎아 만든, 화려하게 장식한 이콘으로 꾸며진 중앙제대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동굴 위에 있다.

수많은 향로에서 올라오는 연기와 향이 제대를 둘러싸고 있었다.

여기저기 걸려있는 동방교회 특유의 상징이 가득 담긴 화려한 이콘들이 눈을 끌었다.

지하로 내려가기 전에 우리는 마음속 기도를 담은 초를 봉헌했다.

 

우리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동굴로 내려가기 위해 제대 오른편으로 내려갔다.

다른 순례자들의 뒤를 따라 조심스럽게 내려간 예수님의 탄생장소는

은빛의 “베들레헴의 별”로 표시되어있었다.

예수님 탄생 성당은 부분으로 나뉘어 여러 교회가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데

예수님의 정확한 탄생장소를 가리키는 이 베들레헴의 별은 가톨릭교회 소유라고 한다.

1847년 그리스 정교회 쪽에서 이 별을 훔친 사건으로 국제적인 분쟁이 일어났고

크림전쟁(1854-56)으로 확대되기도 했다. 평화의 왕이 오신 곳에 평화는 없었던 것이다.

 

라틴어로 “Hic de Maria Virgine Jesus Christus Natus est”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셨다)

라고 새겨진 베들레헴의 별은 14각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예수님의 구원 역사를 보여주는 십자가의 길 14개 처를 상징하며,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까지 14대, 다윗으로부터 바빌론 유배시대까지 14대,

그 후부터 예수님까지의 14대를 상징한다고 한다.

예수님이 오신 이천 년 너머의 구약에서 이어지는 그리스도교의 전통과 신비를

이 은빛별로 상징해 놓은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이신 분이 세상에 오시어 새로운 계약의 시대를 연 거룩한 동굴 바닥에 엎드려 입을 맞추었다.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낮은 자리로 내려오신 하느님의 겸손하심을 감사하고 감사했다.

 

‘탄생 동굴’을 지나 3~4m 정도 더 내려 가면 아기 예수님을 눕혔던 구유가 있던 ‘성탄 동굴’자리가 있다.

모두들 예수님을 받아 안은 복된 구유가 있던 곳을 조배하고 다시 좁은 계단을 통해 성당으로 올라왔다.

 

다시 좁은 계단을 통해 성당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허리를 굽혀야 하는 작은 문을 통해 성당 밖으로 나왔다.

성채 같은 성당을 되돌아보며 거대한 건물 지하에 자리한 아주 작은,

그러나 우주적인 의미를 가진 거룩한 장소, 예수님의 탄생지를 마음 깊이 기억했다.

 

우리는 점심을 먹기 위해 오래된 상가가 늘어선 평화광장까지 걸어갔다.

광장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의 서울광장 같은 곳은 아니고

관공서 앞에 적당한 공터에 상가와 식당이 있는 곳이었다.

우리가 들어간 식당은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인지 모르지만 오래된 중국음식점을 연상시키는 분위기였다.

그곳에서 이스라엘 요리인 양고기꼬치와 튀긴 고기요리를 먹은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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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다음 안내자는 우리를 아랍인 지역에 있는 규모가 큰 기념품 판매소로 안내했다.

자매들이 선물을 고르는 동안 나는 먼저 밖으로 나왔다.

잠깐이라도 아랍인 거리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멀리 갈 수는 없었고 성물 판매소 앞 길을 건너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낡은 담이 쳐진 집들이 늘어선 거리는 초라하고 조용했다. 오가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 쓸쓸했다.

다시 차를 타고 가면서 차창 밖으로 유대인 지역과 아랍인 지역을 구분하는 장벽이 이어져 마음이 계속 무거웠다.

 

지역에 따라 팔레스타인 지역과 지역이 나뉘고 고립됨으로써 가족이 분리되고

어느 날 갑자기 학교를 갈 수 없게 되는 등의 인권 침해가 일어난다고 한다.

그 때문에 사람과 생산품들의 이동이 제한되어 경제적 파괴가 심각한 지경임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살아야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또 얼마나 피폐해 질 것인가.

사람들의 표정 없는 얼굴과 허름한 차림새, 낡은 주거환경으로 아랍인 지역은 금방 표시가 난다.

팔레스타인 구역 쪽의 분리장벽에는 유대인들에 대한 아랍인들의 분노를 드러내는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이차대전 때에 독일 나치 정권에 의해 잔혹한 인종 말살행위를 당했던 유대인들이

요즘 팔레스타인에게 하는 가혹행위와 억압정책을 보면

이들이 하느님이 명하신 사랑의 율법을 지키는 자들인가 하는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거룩한 땅을 쟁취하기 위해 벌이는 전쟁이라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요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이 보도될 때마다 우리가 다녀온 곳이 걱정되어 기도가 절로 나온다.

얼마 전에 총탄 자국이 얼룩진 가자지역의 주택가에서 놀고 있는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의 사진을 보면서

이곳이 내가 갔던 곳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이기심과 폭력으로 얼룩진 세상에 예수님이 가르치신 진정한 평화가 이루어지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을 실천할 것을 결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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