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시간 전에는 산악지방인 이스라엘에 있었다. 그때는 날씨도 궂어서 비가 뿌릴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평야와 푸른 바다가 있는 그리스에서 해가 비치는 신선한 오전을 맞이하고 있다.
너무도 맑고 푸르러 눈과 마음이 확 트이는 에게 해를 끼고 달려간 곳은
아버지 바오로 사도가 선교 여행 중 세 번이나 방문했던 캥크레에 항구였다.
사도행전과 바오로 서간에서 몇 번 언급되는 항구도시 캥크레애는 코린토 지역의 항구도시로
사도 바오로 시대에는 소아시아지방과 유럽을 연결하는 무역항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찾아간 바닷가에는 유대인 회당(로마서 16, 1) 터라고도 하고,
신전 터라고도 하는 건물이 지진으로 물속에 잠겨 있었다.
지중해의 찰랑대는 물속에 잠긴 유적의 잔해 사이로
수초들이 물결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사이에서 오랜 역사가 숨 쉬고 있었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바오로 사도는 이차 전도 여행 때 이곳에 들러 주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서원을 올리고
머리를 깎아 자신의 결심을 확고히 했다고 한다.
‘바오로는 서원한 일이 있었으므로, 떠나기 전에 캥크레애에서 머리를 깎았다.’ (사도 18, 18b)
마을 어디엔가 바오로 사도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아테네시로 가기 위해
아쉬운 마음으로 푸른 바다를 두고 떠나야 했다.
아테네시가
그리스 신화가 담긴 에게해를 한 바퀴 돌아 드디어 아테네시로 들어섰다.
서양문명의 발상지이며 그리스의 수도인 아테네 시내로 들어간 첫인상은 교통이 복잡하다는 것이었다.
보이는 건물이나 보이지 않는 땅속까지 모든 것이 유적이어서 쉽게 도로와 건물을 개축하거나 새로 지을 수 없고,
늘어나는 차량이나 사람들을 제대로 수용하기가 어려워졌을 것이다.
아테네시의 공해는 세계 최고라고 하던가.
그래서 공해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전기버스가 운행되고 있다고 한다.
길가에 늘어선 상점의 간판들은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았다.
번쩍이는 조명에 돌출간판으로 도배된 우리나라의 서울시내 중심가와 비교되었다.
오래고 높이가 낮은 대리석 건물들에서 풍기는 오래된 느낌들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수사학이 시작된 나라답게 철학적이고 토론을 즐기는 이 나라 사람들은
성품도 여유가 있고 신사적이라고 안내자가 말했다.
그런데 내일은 아테네 시에서 대규모의 시위가 있을 예정이라서 시내 교통이 막힐지 모르니
늦더라도 내일 보러 갈 장소까지 오늘 둘러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데모하는 원인은 그리스가 오늘날 겪고 있는 심한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해마다 평균적으로 6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오고 세계 최대 선박왕국으로 알려진 나라 그리스가
오늘날 경제적 어려움에 빠진 것은 오랜 독재정치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자연적인 아름다움과 풍부한 작물들로 낙천적인 민족성을 지닌 데다
고대 그리스 때부터 주변의 수많은 도시국가와의 연대와 침략을 받아 왔기에
국민의 국가의식이 약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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