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아폴리스’라는 옛 이름을 가진 카발라에 도착할 즈음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호텔에 들어가 저녁을 먹고 나니 아홉 시가 넘었다.
시간이 늦었지만 우리는 우산을 쓰고 둘씩, 셋씩 호텔에서 오 분 거리도 되지 않는 곳에 있는 카발라 항구를 찾아갔다.
카발라는 ‘말에서 내리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소아시아로 가려면 말에서 내려 배로 갈아타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소아시아 트로아스 지방에서 선교를 하고 있던 바오로 사도는 환시 중에 마케도니아인의 초대를 받는다.
그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인 것을 직감한 바오로는 트로아스에서 배를 타고 카발라 항구에 도착하였다.
당시 로마의 속주였던 마케도니아 지방의 항구였던 마케도니아,
하느님은 이 작은 항구에 도착한 사도 바오로를 통해
유럽을 향하여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하셨다. (사도행전16, 6-10) 비에 젖은 작은 항구는 조용했다.
어두운 바다를 바라보며 그 옛날 바오로 사도가 배를 타고 도착하던 모습을 상상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새로운 세계인 네아폴리스 항구가 가까워지는 배 위에서
바오로 사도의 마음에 일어났을 설렘과 불안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낯선 곳에서 시작하게 될 선교에 대한 인간적인 걱정을 주님께 대한 신뢰로 잠재웠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나는 주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듣기나 하는 건가 하는 의심이 일어난다.
핑계와 구실로 안주하려는 욕구를 합리화하는 모습이 어둠 속에서도 부끄럽게 느껴졌다.
검은 바다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걷던 우리는 골동품가게가 이어진 길을 지나 호텔로 돌아왔다.
자고 일어나니 어제 내리던 비는 눈이 되어있었다.
아침에 차가 떠나기 전에 오렌지를 사기 위해 시장을 찾아갔다.
우리나라의 재래시장 같은 분위기의 청과시장이었다.
눈발이 날리는 추운 날씨에도 잎이 달린 싱싱한 오렌지가 가득 쌓여있었다.
궂은 날씨에 무표정한 얼굴로 부지런히 상품을 정리하는 상인들의 모습에서 우리나라 새벽시장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날리는 눈발을 맞으며 카발라 중심가에 있는 성 바오로 기념성당까지 걸었다.
성당 앞에는 사도 바오로가 꿈속에서 마케도니아인의 초대를 받는 장면과
카발라에 도착하여 선교하는 장면, 사도의 설교를 귀 기울여 듣는 사람들의 모습을 벽화로 꾸며 놓았다.
그 앞으로 바오로 사도가 카발라 항구에 도착하여 첫발을 디뎠다는 항구의 돌과
로마 시대의 원주형 기둥하나가 놓여있었다.
아침이라 그런지 교통이 혼잡한 카발라에
이천여 년 전 이곳을 찾아온 사도바오로를 기억하게 해주는 흔적은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를 통해 그리스도교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의 마음에 새겨진 주님의 가르침은
오늘도 살아있다는 믿음이 위안을 주었다.
필리피로 이동하는 길옆으로 사도 바오로와 함께 카발라에 왔던 실라를 기념하는 아담한 성당이 있었다.
지금은 수도원으로 사용되고 있다는데 옛날에는 에냐시아 길을 걷는 사람들이 쉬어가던 장소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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