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피아 가도
아침 일찍 아피아 가도를 찾아갔다.
필립바수녀님의 역사적이고 신학적이며 깊은 묵상이 담긴 해설과 더불어
사도 바오로의 로마에서의 행적을 더듬는 은총의 시간이다.
아피아 가도는 사도 바오로가 로마에 입성한 길이다.
사도 바오로가 수인의 몸으로 아피아 가도를 걸어 트레스 타베르네 지역에 이르자
로마에 사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그곳까지 마중을 나왔으므로
의기소침하던 바오로는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사도28,15)
사도 바오로 당시에는 이 도로를 활발하게 이용하였으니 점차로 이곳은 로마 외곽의 한적한 곳이 되어 있었다.
로마 시내로 들어가는 입구이기도 한 트레스 타베르네 지역은 원래 로마 귀족들의 무덤 터였다.
지금도 옛날 귀족들의 돌무덤 흔적이 남아있다.
그리고 숲으로 가려진 저택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오월에 피는 꽃과 무너진 유적들이 어우러진 길의 풍경을 돌러보며 가는 길이
아침 햇살에 깊은 음영을 더 해 주었다.
초기의 교회당 터, 황제의 궁전터, 길 주변은 모두 옛날의 역사를 담고 있었다.
우리는 성 스테파노 카타콤바 입구까지 걸어갔다.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테베레 강과 포로로마노 옆을 지나갔다.
사도 바오로 레골라
도로변 건물 벽에 이곳에서 사도 바오로와 성 베드로가 만났다는 표시가 있었다.
그 건물을 지나 게토라고도 하는 유대인 지역 깊숙한 곳에
로마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래된 성당 건물이 보였다.
지금은 선교수도회가 관리하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성당 옆의 지하로 내려갔다.
지금은 경당으로 꾸며져 있었지만, 전에는 지하 셋방이었을 것이다.
이곳이 바로 사도 바오로가 생활하던 장소로 바오로의 학교라고 부르는 곳이다.
사도행전의 마지막 구절은 로마에 입성한 사도 바오로의 생활을 전해주며 끝을 맺고 있다.
‘바오로는 자기의 셋집에서 만 이 년 동안 지내며, 자기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맞아들였다.
그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히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가르쳤다. (사도 28, 30-31)’
천장이 높은 작은 방 중앙에 있는 이콘에서는 비록 몸은 사슬에 묶여 있어도
영혼은 누구보다 자유로운 사도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오히려 사도 바오로를 감시하는 병사의 모습은 작고 초라해 보인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사도 바오로의 영적인 자유의 모습을 잘 묵상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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