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훈] 가난한 마음 안에 뜬 별 (주님 공현 대축일)

참으로 힘겨운 삶을 살다가 떠나신 어느 할머니의 인생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우리 할머니들이 그러셨듯이 그도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모진 시집살이를 하며 손자들까지 돌보다가 많은 빚까지 지게 되었고 결국 그 고단한 삶을 마감했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동네에서 잘 모르던 사람까지 빈소를 찾아와 문상을 하였는데 놀랍게도 그들의 도움으로 빚을 다 갚게 되었습니다.

어렵게만 사신 줄 알았던 그의 진짜 삶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밭일을 할 때에도 언제나 묵주를 손에 쥐고 일할 만큼 깊은 신앙을 간직한 이였습니다. 자신도 어려운 처지였지만 주변 이웃들을 돌보며 쌀 한 바가지, 채소 한 묶음을 나누는 아름다운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은 이들을 도와주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은혜를 입었던 많은 사람들이 그 은혜를 갚으러 빈소를 찾았고, 그 은혜는 고스란히 자녀들에게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어떤 것인지 그 할머니의 삶을 통해 확실하게 알게 됩니다. 그것은 사랑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8).” 그의 인생에서 하느님의 모습, 예수님의 삶을 보게 됩니다.

그는 어떻게 그 모든 것을 참고 견디어 낼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분의 순수하고 맑은 신앙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맹목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그분의 신앙이 그분의 모진 삶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었을 것이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글자 그대로 실천하셨던 것 같습니다.

동방박사들은 별을 따라 무작정 길을 떠났고(마태 2,2), 마침내 그 별을 보고 더 없이 기뻐하였습니다(마태 2,10). 그 별은 하느님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학자적인 이성과 양심 안에 떠오른 별만을 따라 왔고, 그것은 그들의 신앙과도 같았습니다. 그들의 진리와 신앙은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 예수님 안에서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이론도 관념도 아닌 실재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진리는 이 작은 구유로 모입니다. 단 하나의 진리, 불변하는 진리는 사랑이고, 그것은 하느님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 세상 안으로 들어오셔서 세상은 그분을 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이고(요한 14,10), 예수님을 보았으면 하느님을 본 것입니다(요한 14,9). 이제 그 예수님은 믿는 이들의 마음 안에서 사시며 여전히 일하십니다. 믿음이 순수할수록 그분은 그 안에서 더욱 생생하게 살아계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온전히 믿는다면 그분은 우리 안에 완전히 살아계십니다.

그 할머니가 겪은 삶은 참으로 모질었고 그분이 쌓은 공덕은 고스란히 다른 사람들에게 돌아갔습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세상은 그의 삶을 두고 불행하다 하겠지만, 그분이 오롯한 신앙으로 그런 모진 삶을 견디어낼 수 있었음을 아는 그리스도인들은 그가 하느님과 함께 사셨기 때문에 가장 행복하셨다고 말합니다. 하느님을 가지면 다 가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순수하고 굳은 신앙이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그것은 천성이나 노력이 아니라, 하느님께 받은 선물입니다. 그의 지독한 가난은 무한히 부유하신 하느님을 찾게 했을 것이고, 그분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인 아기로 이 세상에 오셨고 아무도 위로해줄 수 없이 가난하게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써 당신의 신성을 완전하게 드러내셨으니, 오늘도 가난한 이들, 하느님 이외에는 어떤 희망도 지닐 수 없는 이들 안에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교회는 이런 삶을 지향하는 이들의 모임이고, 이들은 하느님의 백성입니다. 우리가 모두 그 할머니처럼 산다면 그 빛은 온 세상 구석구석 다 비출 것입니다. 그 빛은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 네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아라. 그들이 모두 모여 네게로 온다. 너의 아들들이 먼 곳에서 오고, 너의 딸들이 팔에 안겨 온다(이사 6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