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9일 어떻게 살았는가?
순교는 어떻게 죽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상은 종교적 신념과 종교 그 자체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을 순교라고 알고 있지만, 순교는 증언이다. 진리, 하느님,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에 대한 증언이다. 그래서 순교자들의 죽음은 그분들의 삶 전체의 요약이다. 그것은 틀릴 수 없이 옳은 말이고, 하느님은 살아계시며, 하느님은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신다는 증언이다.
순교가 종교를 위한 투쟁이었다면 그들은 박해하는 세력에 대항해서 조직적으로 맞서 싸웠을 것이다. 거룩한 전쟁이라 칭하며, 뜨거운 마음으로 그들을 공격하고 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신앙 선조들은 그들을 피해 숨어 살았다. 믿는 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세상을 떠나 조용히 살았다. 하지만, 증언해야하는 때가 오면 담대하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했고, 죽이는 자들을 두렵게 하며 목숨을 내놓았다. 예수님이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이들을 용서해달라고 청하셨던 것처럼 그들은 박해하는 자들을 공격하거나 해치지 않았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삶이 어떠했을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사랑 가득한 생활이었을 것이다.
세상은 겉모습만 보고 그들을 영웅이라고 하지만, 우리 하느님은 우리 속마음을 보시고 심판하신다. 무슨 마음으로 그런 결정을 했고, 어떤 지향을 갖고 그런 행동을 했는지가 순교의 기준이 된다. 그것은 매우 내적인 것이라 본인과 하느님이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모든 죽음이 순교가 될 수는 없고, 모든 땀과 피가 하느님 뜻이 될 수 없다.
순교는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삶은 곧 지향의 표현이다. 그가 일생 무엇을 원했고, 그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지에 따라 그가 성인으로 공경 받고 또 순교자가 된다. “그들은 죽기까지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묵시 12,11).” 그분들은 참 충실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사셨던 분들이고, 하느님 두려운 줄 알고 사셨던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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