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젖가슴(지극히 거룩한 구속주 대축일, 7월 셋째 주일)
제가 속해 있는 수도회의 이름은 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입니다. 보통 구속주회, 또는 레뎀토리스트회(Redemptorists)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7월 셋째 주일은 수도회 명칭의 의미를 되새기는 대축일로 지냅니다. 구속주회가 거룩한 것 아니고 구속주이신 예수님이 지극히 거룩하다는 뜻입니다. 한국말로 구속은 그 한자어에 따라 정반대의 뜻을 지닙니다. 우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범죄인을 붙잡아 가두는 ‘구속(拘束)’과 예수님께서 죄의 노예생활을 하는 우리를 당신의 고귀한 피를 지불하시어 우리를 자유인으로 풀어주는 ‘구속(救贖)’입니다. 그 지불 대가를 속전(贖錢)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는 죄인을 붙잡아 가둔다는 뜻이고, 반면에 다른 하나는 죄인을 풀어주어 자유롭게 해준다는 뜻입니다.
알폰소 성인께서 저희 수도회를 창립하시고 처음에 그 이름을 ‘구세주회(1732년)’로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구속주회(1749년)’로 그 이름을 바꿨습니다. 구세주나 구속주나 둘 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일컫는 말인데 굳이 왜 바꾸셨을까요? 구세주는 위험에 빠져 죽게 된 인간을 당신의 전능하신 힘으로 구원하신 분이라면, 구속주는 죄의 노예로 살아가는 불쌍한 인간들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당신의 목숨을 내던져 그들을 자유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게 만들어 주신 분입니다. 서로 다른 분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 호칭이 지닌 언어적인 의미와 느낌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같은 분을 다른 칭호로 부름으로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더 깊게 잘 알게 됩니다.
사람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묻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이라면서 왜 저렇게 고생을 하고, 게다가 치욕적으로 죽으면서 세상을 구원하였느냐고 묻습니다. 동화에 나오는 것처럼 착한 사람들에게 하늘에서 튼튼한 동아줄 내려오는 곳을 알려주시면 간단했을 텐데 말입니다. 사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도 성체찬미가에서 ‘사랑 깊은 펠리칸, 주 예수님, 더러운 저, 당신 피로 씻어주소서. 그 한 방울만으로도 온 세상을 모든 죄악에서 구해 내시리이다.’라고 노래했습니다. 그런 능력을 가지신 분이 왜 사람이 되시고, 이곳저곳을 고생스럽게 두루 다니시며 땀을 온 땅에 흘리시고, 급기야 죄인으로 몰려 십자가 극형까지 당해 당신의 모든 피를 땅에 쏟으셨을까요? 이에 대해 알폰소 성인은 하느님이 저렇게 땀을 흘리시고 피를 쏟으신 이유는 우리의 마음을 가져가시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을 알게 하셔서 이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려고 그런 무모한 일을 감행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은 죄인들을 죄대로 심판하시는 두려운 군주가 아니라, 그들의 죗값을 대신 치러주실 정도로 미치도록 인간을 사랑하시는 아버지, 어머니, 삼촌, 이모, 할아버지, 할머니 하느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알폰소 성인은 이런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미친 하느님(Crazy God, Pazzo Dio)’이라고 부르기 까지 했습니다. 한 마디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제정신이 아닌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16-17).” 아무리 사랑해도 자기 자식을 내어주는 미친 부모는 없습니다.
하느님이 당신 자신도 아닌 외아드님을 죄인들의 무리에게 넘겨주신 것은 세상이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고, 그것이 곧 구원이었습니다. 동아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좋은 하느님을 알고 그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우리와 함께 지내시며 모든 것을 다 보여주시고 알려주신 것은 우리들이 당신을 믿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 위에 달리신 모습을 보면 마음 아프고 송구해서 고개를 들 수 없지만, 그렇게 하느님은 우리들의 마음을 가져가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당신을 믿게 하십니다. 이렇게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믿고 자신의 마음을 당신께 맡기게 하십니다. 마음을 드리면 다 드리는 것입니다. 거친 세상살이 중에 우리는 마음 둘 곳을 찾습니다. 가장 안전한 곳은 엄마의 젖가슴이지만, 그곳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짧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서 그곳을 찾고, 배우자에게서, 또 그 밖의 다른 곳에서 찾으려 하지만 우리는 찾지 못하고 방황합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십자가 위에 높이 달리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을 나에게 다오. 네가 애타게 찾는 엄마의 젖가슴보다 더 안전한 곳이 바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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