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운 육체(성모승천대축일, 8월 15일)
우리는 육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육체가 죄의 도구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이것이 없으면 선행도, 사랑도 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손수 만드신 것이 나쁠 리가 없습니다. 사실 죄의 뿌리는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게다가 죄의 뿌리는 마음이 악해서라기보다는 어렸을 때 생존하기 위해 잘못 배운 것을 옳고 선한 것이라고 잘못 믿어서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는 부모님들로부터 유전적으로 어쩔 수 없이 물려받은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육체 그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닙니다.
성모님은 우리와 같은 하느님의 피조물이셨지만 이 지상 삶이 끝난 후 영혼과 함께 육신도 하늘로 들어 올려 졌다고 믿습니다. 이에 대한 명시적인 기록은 성경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이 교리는 오랜 시간 동안 성모님을 사랑한 교우들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이것을 신학자들이 연구하여 정리해서 마침내 믿을 교리로 선포되었습니다(1950년). 그런데 빈무덤이 예수님 부활의 증거가 아니듯이, 성모님의 죽어 묻혔다는 기록이 없다고 그분이 승천하셨다는 주장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부활의 확실한 증거는 주님의 삶과 그 제자들의 증언 그리고 그들이 죽는 모습까지도 예수님을 닮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모님의 승천에 대한 믿음도 그분의 생애, 그분을 사랑하고 공경하던 수많은 이들의 증언들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 부활과 성모님 승천의 증언은 두 분과 그분들을 사랑한 이들의 삶입니다. 육신이 없었다면 이 모든 것들이 신비로운 소설이었을 겁니다.
성모님의 생애는 한 마디로 믿음 자체였습니다. 믿음으로 가브리엘 천사가 전한 하느님의 계획과 제안을 받아들이시고, 그렇게 낳은 아들 예수님을 키우셨습니다. 아들이 성장해서 자신의 일을 하는 동안 이해할 수 없는 여러 일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셨고, 거기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을 낳고 키우셨던 그 마음으로 그분의 제자들을 아드님 대하듯 대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예수님을 낳고, 키우고, 동반하셨습니다. 성모님은 온 생애를 통해서 하느님의 인류구원사업에 협력하셨습니다. 대부분의 우리 어머니들이 그러셨듯이 그분의 이 위대한 노력은 외형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그 보이지 않는 노력과 마음 씀이 없었다면 하느님은 또 다른 구원계획을 짜셔야 했을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성모님에게 풍성하게 내려진 하느님의 은총과 주님께서 언제나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루카 1,28). 그런데도 성모님이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고,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계획에 협력하지 않았다면 이 위대한 계획은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지막 시간까지, 피조물로서 받은 생명이 다 소진되는 그 때까지 아드님의 죽음을 포함해서 이 모든 일들을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하느님의 일에 참여하신 그분의 육신은 하늘로 들어 올려 져야 마땅했습니다.
성모님의 승천이 우리의 희망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도 당신처럼 살면 죄의 온상처럼 여겨지는 이 육체도 성모님의 그것처럼 하늘로 들어 올려 질 것이라고 믿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살아 온 우리의 삶이 그것을 뒷받침해줍니다. 성모님이 당신의 육신과 함께 하늘에 계신다는 믿음이 우리의 희망이 되는 것은 그분이 여전히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심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단지 우리의 기억이나 마음속에만 남아 계신 분이 아니라 가브리엘 천사를 만나셨던 그 날부터 오늘까지 그리고 세상 마지막 날까지 하느님의 일에 협력하십니다. 2천 년 전에 아드님과 제자들을 돌보고 키우고 보호하시며 함께 계셨듯이 오늘도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십니다. 이 모든 것이 육신이 없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도 육신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죄를 짓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으로 선행도 하고 사랑 그리고 희생도 합니다. 죄인이지만 하느님의 은총으로 의롭게 살 수 있습니다. 육신부활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혼백으로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은 아닐 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인류구원을 완성하시자 무덤에서 잠자던 의인들이 깨어났던 것처럼(마태 27,52), 잠자고 있는, 두렵고 서툴러 웅크리고 있는, 잠자고 있는 우리의 의로움도 깨어나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광복절입니다. 수많은 의인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억합니다. 그분들의 삶이 얼마나 고달팠는지 압니다. 그분들이 세상이 떠나는 날 성모님이 제일 먼저 달려 나와 그들을 맞아주셨을 것입니다. 의로움과 그에 따른 어려움, 그리고 그 보상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의롭게 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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