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9월 30일(성 예로니모) 후회 안 하기 위해

930(성 예로니모) 후회 안 하기 위해

 

예로니모 성인은 대중들이 잘 모르는 희랍어, 히브리어로 쓰인 성경을 대중적인 라틴말로 번역하였다. 우리나라도 6-70년 전만해도 라틴말로 미사를 거행하고 라틴말 성경말씀을 들어야 했다. 지금은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말로, 게다가 대중적인 말로 미사에 참례하고 하느님 말씀을 들을 수 있다.

 

그 때는 그게 당연한 것으로 여겼고, 하느님은 라틴말로 말씀하시는 줄로 착각할 정도였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을까 싶다. 우리가 하느님께 바라는 것보다 하느님이 훨씬 더 우리와 가까워지기를 바라신다. 그래서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살기까지 하지 않으셨던가? 우리가 당신의 마음과 뜻을 알아들을 수 있게 사람이 되어 오셨다.

 

하느님은 라틴말로 말씀하지 않으실 뿐더러 성당과 교회 안에만 계시지 않는다. 그분은 우리와 가까워지기 바라시기 때문에 우리의 일상을 함께 하기를 바라신다. 그런데 우리가 그분을 자꾸 교회 안에, 성당 안에, 감실 안에 가두려고 하는 것 같다. 성당 안에서만 그리스도인이고 그 밖에서는 세속인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를 구원한다. 참된 치유는 증상만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증상을 일으키는 원인을 알아내서 없애는 것이다. 하느님의 구원은 우리의 현실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괴롭히는 그런 현실을 만들지 않게 한다. 그것은 각 개인의 내적인 변화, 혁명적인 변화에서 비롯한다. 그것은 너와 나사이의 벽, 이념간의 대립, 민족적인 적대감을 무너뜨린다. 그래서 나의 적은 너도, 다른 이념과 피부색깔도 아님을 깨닫게 한다. 사실 우리의 적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예수님은 당신의 수난과 죽음의 미래를 보셨다. 그분이 신통력이 있어서 미래를 내다보신 것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 보는 순수하고 또 모든 이를 사랑하는 그 마음이 당신이 장차 겪으실 일들을 예상하고 확신하게 한 것이다. 그분은 당신의 사명과 존재이유를 잘 알고 계셨기에 결심을 바꾸지 않으셨다. 죽음도 꺾을 수 없었던 사랑의 결심이었다. 그 덕에 우리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게 되었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은 참 하느님을 알지 못해서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예수님을 가로 막았을 것이다.

 

지금 당연하다고 믿는 것이 나중에 그 때는 왜 그랬을까 하고 후회하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신통력은 없으니 그 길을 먼저 가신 예수님을 따라가야겠다. 그분은 라틴말이 아니라 한국말로 말씀해주시고, 목소리를 들을 수 없어도 알아듣게 해주실 것이다. 나는 있는 그대로 보고, 거기서 언제나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기만 하면 그분께서 내가 해야 할 말과 행동을 알려주실 것이다, 성모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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