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감동 이야기 없는 세상을 꿈꾸며(주님 성탄 대축일 12월 25일)

 

감동 이야기 없는 세상을 꿈꾸며(주님 성탄 대축일 12월 25)

 

우연히 접하게 된 이야기입니다어느 수도원에 하느님만을 섬기며 가난하게 살아가는 문지기 수사님 한 분이 있었습니다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겨울 날밤늦게 길을 잃은 한 가족이 찾아왔습니다아기를 안은 젊은 부부가 눈길을 헤매다가 수도원을 발견한 것이었습니다문지기 수사님은 추위에 떨고 있는 가족을 성당으로 데리고 갔습니다수도원에는 재워줄 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문지기 수사님은 감실에서 성체를 꺼내어 다락방에 모시고는 성당에 이부자리를 펴고 떨고 있는 가족을 재웠습니다다음 날 원장 수사님이 새벽기도를 하러 성당에 들어갔다가 잠자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경악했습니다화가 머리끝까지 난 원장 수사님은 문지기 수사님에게 불호령을 했습니다어떻게 예수님을 다락방으로 옮기고 사람들을 성당에 재울 수 있느냐고그러자 문지기 수사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은 추위를 타지 않지만 사람 안에 계신 예수님은 몹시 추위를 타십니다.”

 

이 수사님이 실제 인물인지 만들어낸 인물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대답은 정말 질투가 나게 합니다재치가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그 대답은 누구도 반론할 수 없는 명답이었고 또 모자라거나 혹은 겉치장에 불과한 것 같은 원장 수사님의 신심과 신앙을 고발했습니다사람들에게 따뜻한 잠자리를 내어주고 그 대신 당신은 말먹이통과 따가운 지푸라기 침대 위에 이 세상 첫 자리를 마련하신 하느님의 마음을 잘 아셨던 것 같습니다얼마나 하느님을 잘 알고 또 친하면 저런 행동과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아니 저런 마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감동적인 이야기들은 넘쳐납니다그것이 실제이든 지어낸 이야기이든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만은 사실입니다그런데 거기까지인 것 같습니다감동이 하느님을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이야기 속의 그 수사님은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추위에 떨고 있는 한 가족 안에서 뵈었습니다그분의 영성생활은 기도와 전례 그리고 수도원 담장 안에 갇혀 있지 않았습니다하느님이 하늘에서 우리들의 딱한 처지를 내려다보시며 안쓰러워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하늘의 왕좌에서 사나운 전사처럼 멸망의 땅 한가운데로 뛰어내렸습니다(지혜 18,15).” 그렇지만 온 세상을 뒤흔들어 깨우지 않고 새벽 이슬비처럼 조용히 우리 안으로 들어오셔서 우리의 좋은 이웃이 되어주셨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티토 2,11).” 그렇게 나타나신 하느님은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의 좋은 친구와 이웃이 되셨습니다그분이 지닌 지극한 연민과 사랑의 힘은 마구간의 탄생이집트 피난권력자들의 위협과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의 반대십자가의 수난과 죽음도 막을 수 없이 강했습니다.

 

좋은 이야기감동적인 사연들이 넘쳐난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에 가난하고 상처받아 아파하는 이웃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연일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보도되는데 정치인과 강대국의 지도자들은 매일 싸울 준비만 하는 것 같고 그들이 함부로 내뱉는 소리에 우리들은 매번 전쟁과 죽음의 공포를 느끼곤 합니다그리고 그런 현실들을 미디어를 통해 접하기도 합니다시리아군의 공습으로 한쪽 눈을 잃은 아기 카림 압둘라해변가에 죽어 있는 어린이 쿠르디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단 돈 400달러(45만원)에 자신을 노예로 팔아야 하는 난민들생각할수록 눈물 나게 안타깝고 슬픕니다그러니 하느님은 오죽하시겠습니까그 가장 작은 이웃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유도 모르고 그런 일을 겪습니다이런 세상에서 뭘 해야 할지 몰라 속상하고 답답합니다이럴 때 이야기 속의 그 수사님은 어떻게 하셨을지 만나 물어보고 싶습니다그 수사님이라면 분명 뭔가 하셨을 것 같습니다.

 

감동 중독자처럼 살지 말아야겠습니다그 대신 그런 이야기들이 만들어지지 않는 세상을 꿈꿔야 하겠습니다어쩌면 예수님은 그런 이야기들을 만드신 게 아니라 그런 이야기가 필요 없는 세상을 마음이 담고 또 그것을 우리에게 전해주셨는지 모릅니다우리가 아는 예수님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본당이나 수도원 울타리에 갇혀 계실 수 없는 분입니다그분은 세상 곳곳에서 우리들을 부르십니다그분의 사랑 안에서 땅을 흔들며 저벅거리는 군화도피 속에 뒹군 군복도모조리 화염에 싸여 불꽃의 먹이가 됩니다(이사 9,4).”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어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해방하시고 또 깨끗하게 하시어선행에 열성을 기울이는 당신 소유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티토 2,14).” 우리의 하느님은 임마누엘 주님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며 상처 입은 이 세상 속에서 구세주의 증인이 되어 달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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