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연중 2주일, 1월 14일)
성경에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신약성경에는 예수님이 첫 제자들을 만나는 장면들이 소개됩니다. 요한복음서에 따르면 안드레아는 세례자 요한의 소개에 따라 예수님을 따라나섭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를 뒤돌아보시며 “무엇을 찾느냐?(요한 1,38)”하고 물으십니다. ‘왜 따라오느냐?’라고 물으셔야 할 것 같은데, ‘무엇을 찾느냐?’ 하셨습니다. 안드레아의 얼굴과 눈빛에서 예수님은 그가 뭔가를 간절히 바라거나, 잃어버린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는 그의 마음을 읽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는 내적인 헛헛함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비하면 세상은 정말 많이 바뀌었습니다. 필요한 물건 하나를 사려해도 너무나 종류가 많아서 적당한 것을 고르는 것도 큰일입니다. 그리고 언제 어디에서나 가족 친구들과 쉽게 연락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소통도 간편해졌는데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점점 낮아지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행복은 외형적인 것이 아니라 내면적인 어떤 것임이 확실합니다.
안드레아는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요한 1,38)”하고 되물으며 예수님의 그 질문에 대답합니다. 이 질문은 곧 ‘예수님과 함께 지내고 싶습니다.’ 혹은 ‘예수님에게서 세상사는 법, 삶의 의미, 행복해지는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전쟁 같은 세상살이 중에 길을 잃어버렸거나,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은 헛헛함이 있거나, 또는 외형적으로는 바라던 것들을 다 이루었는데도 만족스럽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속적인 기준으로 보면 그의 바람을 채워 줄 적당한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가난했고, 권력도 없었고, 게다가 당신의 추종자들을 애써 끌어 모으지 않으셨으니 야망도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분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게 세상살이에 자신이 있으셨습니다. 그분에게는 생의 목적지, 삶의 무게를 짊어지는 기술과 그것들의 의미 그리고 완전히 만족할 수 있는 삶, 한 마디로 참으로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와서 보아라(요한 1,39).”라고 대답하십니다. 안드레아는 그렇게 예수님과 하루를 보내게 됩니다. 하느님과 함께 하루를 보낸 것입니다. 하느님과 인간, 창조주와 피조물, 부모와 자녀, 심판관과 죄인, 생명과 죽음, 물과 목마름, 완전과 불완전이 만났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이 행복의 근원이고 그분만이 우리를 참으로 행복하게 해주신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안드레아의 헛헛한 마음은 예수님을 만나면서 채워졌습니다. 그는 이것을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요한 1,41).” 그는 잃어버린 것 같은 것을 찾았고, 채워지지 않은 부분이 꽉 채워졌으며, 더 이상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물질적 풍요와 안정과 자유로운 소통이 채울 수 없는 마지막은 하느님으로 채워지고 완성됩니다. 그분이 우리 생의 목적이고, 참된 행복임을 다시 고백합니다.
그런데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이야기가 모든 이들에게 영감을 주지는 않습니다. 이런 것에 관심이 없어도 그렇지만 전쟁 같은 세상살이와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이런 이야기가 사치스럽게 들릴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부르시지만 그 모든 사람이 그것에 응답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전 재산을 내어놓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삶을 봉헌했고, 어떤 사람은 죽음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사무엘은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었고, 첫 제자들은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어디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고 응답하는 걸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가장작은이들을 만나 섬기는 것만큼 확실한 길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시거든 이렇게 대답하십시오.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 3,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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