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2월 2일(주님봉헌축일) 봉헌과 사랑

22(주님봉헌축일) 봉헌과 사랑

 

교우들에게서 하느님께 봉헌합니다.’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그런데 그 고백과 기도의 전후 맥락을 들어보면 그것은 청원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 봉헌은 선물이고 제물이며 헌신이다. 봉헌은 아무런 대가와 보답을 바라지 않고 순수하게 그냥 주는 것이다.

 

마리아님은 첫 아들을 주님의 계명에 따라 하느님께 봉헌하셨다(루카 2,23). 그 당시 이런 예식은 특별한 것이 아니고 오늘날의 출생신고 같은 것이었지만, 오늘날 이런 행위는 종교적인 행위로 불린다. 종교적이란 무슨 뜻일까? 그것은 하느님과 직접적으로 연관됨일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특정 집단의 예식으로 자신들의 삶과 무관하게 보이겠지만, 이와 반대로 하느님을 아는 이들에게 그것은 인류구원, 만민행복을 위한 헌신이다. 세상에서 아무런 대가와 보답을 바라지 않는 순수한 결단이다. 예수님은 봉헌은 십자가 위에서 완성되었다. 채권자가 채무자를 대신해서 빚을 갚은 법은 없다. 심판자가 죄인을 대시해서 죗값을 치르는 일은 없다. 오직 채권자가 채무자를, 심판자가 죄인을 사랑할 때에만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의 봉헌은 참 봉헌이다.

 

인류구원, 만민행복은 하느님의 뜻이고 하느님의 기쁨이다. 그래서 봉헌은 하느님께 드리는 좋은 선물, 마음에 드는 선물이다. 하느님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아들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고 하셨다. 그분의 삶은 하느님께도 그리고 우리에게도 선물이다. 그분의 뒤를 따라 삶을 봉헌한 이들도 마찬가지로 선물이다. 그런데 그 꼭 기쁨을 주는 선물이 아닐 때도 있다. 때로는 그 반대로 아픔이나 도전을 안겨주는 선물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수도자들만이 봉헌을 하는 것은 아니다. 가정을 꾸미고 살아가는 두 사람도 자녀들과 가정 그리고 배우자에게 자신을 봉헌한다. 부모의 봉헌을 먹고 성장한 자녀들은 또 다른 봉헌으로 그들의 자녀를 키운다. 또 어떤 이들은 선한 일에 자신을 봉헌해서 많은 이들이 그것을 통해 도움을 받고 기쁨을 누린다. 그래서 봉헌은 사랑이고, 하느님은 사랑이시니 우리의 봉헌이 순수할수록 우리는 하느님과 가까워진다.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곧 우리 인생의 의미이고 목적이 아닌가? 그것 말고 어디서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예수님을 알고 그분을 따라 참으로 삶을 봉헌한 이들과 친구가 되었다면 시메온 노인처럼 평안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다(루카 2,29). 이보다 더 좋은 인생의 선물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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