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3월 28일(성주간 수요일) 저는 아니겠지요?

328(성주간 수요일) 저는 아니겠지요?

 

유다 이스카리옷은 왜 주님을 배반했을까? 어느 복음서도 그 이유를 속 시원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빈 공간처럼 남아 있어 우리의 상상에 맡겨진 것 같다. 그것은 정답을 맞추어보라는 요구가 아니라 우리도 주님을 배반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은 아닐까?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마태 26,25)” 유다가 이미 수석사제들에게 은전 서른 닢을 받고 예수님을 넘기기로 약속한 후에 그분께 한 말이다. 그가 정말 나쁜 사람이라서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했을까? 그런 사람이었다면 처음부터 그 고단한 복음전도여행을 따라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도 그를 선택하시지 않았던가?

 

그는 나쁜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니 세상에 나쁜 사람이 있을까? 살다보니 바른 길에 벗어나게 된 것이겠지. 그도 스승을 따르기로 결심했던 초기에는 순수하고 열정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스승의 세력은 제도권, 기득권에게 도전을 받고 그분과 제자단의 안위가 위험해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도 스승은 고지식하고 고집스럽게 마치 정해진 운명을 따르는 사람처럼 당신의 길을 가셨다. 그런 스승이 그에게는 위험하고 답답해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아마 그는 스승을 도와드려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권력층의 사람들과 스승님을 만날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고 게다가 그렇게 해서 팍팍한 공동체 살림살이도 보탬이 될 수 있었다. 이게 나쁜 일인가?

 

그런데 결국 나쁜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을 텐데. 하지만 그것은 그가 예수님을 팔아넘겨 그렇게 된 것이 아니었다. 그의 그런 행동이 아니었어도 그분은 그렇게 되실 수밖에 없음을 알고 계셨다.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마태 26,24).” 이보다 더 큰 저주가 어디 있나!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좋았을 생명이라니. 그렇다, 그 길은 오직 하느님만 아시고 가실 수 있는 길이다. 우리는 그분이 그렇게 이루어놓으신 것을 받아 누리면 된다. 염치없어 보이지만 사실 처음부터 그것은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 오직 하느님만 만드실 수 있는 은총의 보고(寶庫)였다. , 어떻게, 무엇으로 등 묻지 말자. 그냥 청해서 받아 얻어 누리자.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라고 여쭙는 대신 주님, 제가 또 그랬습니다. 괴롭습니다. 이 불쌍한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용서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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