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일(성령강림대축일) 맑은 공기와 밝은 햇살
어제 아침은 오랜만에 너무 맑아서 아무리 할 일이 많아도 그 밝은 햇빛을 받으러 밖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음껏 들이 마실 수 있는 맑은 공기와 색안경을 써야만 할 만큼 눈부신 햇살이 가슴 뭉클할 정도로 참 좋았습니다. 일거리 고민거리가 여전히 있지만 그 때만큼은 그것들이 마음을 무겁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러지 못했습니다. 날이 너무 맑고 밝아서 어두운 곳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 각자가 성령님을 그 자신 안으로 맞아들이는 날이 그랬을 것 같습니다. 스승 예수님과 지낸 시간들이 고되고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그분이 언행 때문에 마음 한쪽이 불편했지만 그분과 지냈던 시간들은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너무도 황망하게 스승님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게다가 자신들은 비겁하게 스승님을 버리고 도망쳤고 유다인들이 무서워 문도 걸어 잠그고 숨어 있었습니다(요한 20,19). 그런 자신들이 얼마나 한심하고 싫었을까요? 지금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알 길 없으니 그 시간은 어둠 그 자체였을 겁니다. 그 짙은 어둠 속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빛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곳저곳에서 이러저러한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며 그들을 그 어둠 속에서 이끌어내셨습니다. 어둠 속에서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생활로 되돌아가버렸습니다(요한 21,3). 아직 예수님과 지낸 수년 동안의 생활의 의미와 그 목적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약속대로 마침내 성령님께서 그들 각자에게 내려오시자 그들은 완전히 새롭게, 지난 수년 간 예수님께 배운 대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교회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셨고 그들이 입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제자들은 그날부터 세상 곳곳에 전하기 시작했고, 오늘도 교회는 그 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메마른 대지가 봄비를 맞으며 기쁨과 찬미와 고마움의 노래를 부르고, 그 봄비 뒤에 이어지는 맑은 햇살의 초대에 응답하듯 싹을 틔우고 여린 잎을 피워냅니다. 하느님은 메마르고 어두운 세상에 반가운 봄비와 맑은 햇살이고, 저절로 눈을 감고 감격하게 만드는 시원한 바람이며, 영혼의 기쁜 손님이고 진정한 위로자이십니다. 교회는 바로 이 하느님, 예수님이 알려주시고 보여주신 하느님을 전합니다. 교회는 사느라고 지치고 상처 받은 이들에게 또 다른 무거운 짐을 얹어 주는 우울한 의무제조기가 아닙니다.
하느님은 참 좋으신 분입니다. 믿고 의지하고 그분 말씀대로 살면 우리 모두가 행복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고된 삶은 관심 없이 당신이 하실 말씀만 하시고는 우리가 그대로 사는 지 못 사는 지 뒤에서 지켜보는 분이 아닙니다. 그 정반대로 우리와 함께 생활하시며 우리가 짊어질 수 없는 짐들을 대신 지어주시고 우리에게는 편한 멍에와 가벼운 짐을 남겨주십니다(마태 11,30). 오랜만에 성당에 나온 이를 위해 그동안 제대로 먹지 못했으니 잔치를 벌여 온갖 좋고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워주시며 당신 자녀의 품위를 되찾아주십니다(루카 15,22). 가출했다 초췌하고 꼬지지한 모습으로 돌아 온 자식에게 잘못을 시인하게 하고 합당한 벌을 준 후에야 비로소 씻기고 밥을 먹이는 부모가 있을까요? 오랜만에 성당에 나와 죄인 된 마음에 어색하고 불편한데 무조건 고해실로 밀어 넣는 것이 과연 하느님이 기뻐하실 일일까요? 우리는 하느님의 이 한없이 너그러운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기억이 우리 희망의 근거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2-23).” 부활하신 주님께서 어둠 속에 숨어있던 겁쟁이 제자들을 만나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끝까지 관대하고 너그러워도 괜찮은 것은 우리가 아니라 하느님이 교회를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용서받은 죄인들의 모임입니다. 비겁한 겁쟁이 제자들은 용서받았고 자신이 받은 용서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주었습니다. 그들이 용서받기 위해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거저 받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거저 줍니다(마태 10,8). 그렇게 교회는 포용, 관용, 너그러움, 위로, 휴식, 희망이라는 맑은 공기와 밝은 햇살을 온 세상에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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