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9일(윤지충과 동료순교자) 자기 도전
종교는 내적이면서 동시에 외적이다. 그것은 신념이고 그것에 따라 생활하기 때문이다. 죽기를 원하는 사람이 없다. 순교자들은 죽을 때까지 그 신념을 버리지 않고 삶으로 그리고 죽음으로 그것을 증언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시대를 너무나 앞서 살았다. 세상은 그들의 신념을 이해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고 여겼다. 순교자들은 모두 국법을 어긴 사람들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신앙의 조상들이 지녔던 바로 그 신념대로 살고 있다. 오늘날 누가 남존여비, 양반노비, 임금신하의 관계를 주장할 수 있나? 절대로 되돌아갈 수 없는 생활방식이다. 그들은 몇 백 년의 시간을 뛰어 넘어 살고 있었던 셈이다. 매우 진보적이다.
무엇이 그들이 고향땅을 떠나고 심지어 가족관계까지 끊으며 심지어 목숨까지 내놓게 했을까? 그것은 철저한 교리교육이라기보다는 예수님의 보편적 인류애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느님 앞에 우리 모두는 평등하다는 주장이었다. 가장 높은 하느님이 가장 낮아지셨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희생하셨음을 믿는 이들은 모두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수천 년째 똑같이 변하지 않는 가르침이다. 매우 보수적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시대를 앞서 가서 진보적이고 변하지 않는 진리를 따르기 때문에 보수적이다.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우리는 하느님처럼 영원히 산다. 비록 시대를 너무 앞서 사는 바람에 고단하기는 하지만 그 고단함 덕에 사람이 되신 하느님과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 슬프지만 충만해지고 고단하지만 행복하다.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과 세상은 내 안에 온갖 것들을 심어놓았다. 꼭 그렇게 살아야하는 줄 알았고, 그것들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 안에는 북한 사람들에게 늑대꼬리가 달려 있다는 생각, 심판자 하느님, 배타적이고 교조적인 신앙생활도 있다. 예수님과 친해지면서 그 모든 것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두렵지만 도전하게 되었다. 너무 깊이 뿌리를 내려 그것들을 뽑아내기 어렵지만 그것들을 무시하고 새로운 계명에 따라 살 수는 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요한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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