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일(성체성혈대축일) 하늘에 적힌 이름들
보통 미사라고 부르는 성찬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어떻게 사는 사람들인지 잘 드러냅니다. 우리는 성찬례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십니다. 그리고 그 힘을 입어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실행하고 따르겠습니다(탈출 24,7).”하고 고백하며 세상으로 파견됩니다. 세상 속에서 예수님이 당신의 생명을 나누어주셨듯이 우리도 우리의 생명을 나눕니다.
작은 빵조각이 예수님의 몸이고 한 모금의 포도주가 그분의 피라고 고백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외교인들이 듣기에 참 거북한 주장임에 분명합니다. 우리도 믿을 뿐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물론 신학적으로는 성변화, 즉 빵과 포도주가 어떻게 예수님의 살과 피가 되는지 설명하지만 그것은 증명이 아니라 믿으라는 요청입니다. 사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했는데 이제는 사람의 모습도 없는 빵과 포도주에서 어떻게 그분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성체와 성혈은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삶이 곧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공생활을 하시며 좋은 일을 참으로 많이 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세상은 박애주의자라고 부릅니다. 참사랑은 보답을 바라지 않고 그 사랑이 숨겨지기를 바랍니다. 단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만 알아주시기를 바랍니다(마태 6,2.5.16). 과월절은 이스라엘이 노예생활을 하던 이집트를 탈출하던 때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날 이스라엘은 어린양이나 염소를 잡아 구워먹었습니다(탈출 12,1-11). 희생된 어린양의 살은 앞으로 긴박하게 탈출해야 하는 이스라엘의 양식이 되었고 그의 피는 죽음의 신이 그들을 지나쳐 가게 했습니다. 그 희생양은 그렇게 고마운 일을 해줬지만 그것에 감사하는 대목은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희생된 그 어린양 같은 분이셨습니다. 성체와 성혈이 그 어린양의 살과 피 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악령의 지배에서 벗어나고, 치유 받고, 다시 살아난 이들은 그들이 받은 그 큰 은혜에 보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죽음으로 모든 죄를 용서받게 되었음을 믿는 우리는 그저 그분께 고마울 뿐입니다. 아니, 고마워하기라도 하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참사랑은 보답을 바라지 않습니다. 참사랑이신 하느님은 우리에게 보답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오직 하느님만 알아주시기를 바라며 선행과 사랑한다면 우리도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어느 날 미사 상을 차리며 얼마 전 새로 나온 미사경본을 펼쳤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구원을 재현하는 신비로운 예식이 담겨 있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아주 두꺼운 예식서입니다. 그 책은 수천 번 펼쳐져야하기 때문에 종이가 닳지 않도록 종이장마다 가죽 띠가 붙어있고 겉도 역시 가죽으로 쌓여 있습니다. 어느 동물인지 자신의 가죽을 내어 놓은 그 동물은 참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잠시 머물렀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많은 이들의 도움과 희생으로 삽니다. 그 모든 것을 기록한다면 온 세상을 덮어도 남을 것입니다(요한 21,25). 그 모든 도움과 희생에 참으로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 고마움을 아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리고 말없이 돕고 희생한 사람은 더 행복합니다. 하늘나라에 그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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