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일(성모승천대축일) ‘예’의 모범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사랑의 본성은 이타적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을 따름이 피조물인 우리의 마땅한 도리인 줄 알면서도 그리하지 못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우리의 육체는 철저하게 이기적이다. 이타적인 마음으로 거룩한 결심을 해도 막상 실천하려하면 육체는 엉뚱한 짓을 하는 때가 부지기수다. 부끄럽고 양심이 괴로우면서도 잘 안 된다. 그러니 ‘예’라고 대답하기 정말 어렵고 그 실천은 더 어렵다.
예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최고의 모범이다. 그런데 최고여서일까, 그분이 사신 것처럼 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분은 하느님이셨지만 우리는 죄인이다. 게다가 우리는 그분의 인간적인 모습밖에 볼 수 없다. 그분의 인간적인 행동이 가리키는 신성은 제대로 보지 못한다. 우리의 이런 딱한 처지를 알아 그러셨을까, 예수님은 우리를 돕고 동시에 좀 쉬운 모범이 되어주실 분을 내어주셨다. 성모님이 그분이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성모님의 삶 안에 그 답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마리아님이 가브리엘 천사의 말에 즉각적으로 ‘예’라고 대답했다고 말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원죄 없이 잉태되어 태어나셨기 때문일까? 우리에게 이렇게 어려운 대답이 그분에게는 그리 간단하고 쉬웠을까? 남자의 도움 없이 아기를 잉태하고, 그 이후에 벌어질 복잡하고 위험한 자신의 삶이 전혀 걱정되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그랬다면 엘리사벳을 만나서 그 아름다운 찬미의 노래를 목청껏 부르지 않았을 것이고, 굳이 그 먼 길을 찾아가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분은 몹시 고민했고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어쩔 수 없는 불안을 짊어진 채로 ‘예’라고 대답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한 신학자의 말대로 그분의 ‘예’는 온 우주가 환호했을 만한 한 인간의 위대한 응답이었다.
그분의 ‘예’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곧 그분의 인생 전체였다. 잉태, 탄생, 피난, 아들에 대한 이상한 소문들, 그리고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아들, 하느님의 십자가 죽음 등 이 모든 것에 대한 ‘예’였다. 예수님이 증언하셨듯이 그분의 인생 전체가 ‘예’였기 때문에 그분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 11,28).” ‘예’가 그분의 삶이었으니 이미 여기에서 하늘나라에 사셨다고 말해도 괜찮을 것 같다. 이런 분이 지상 생활을 끝내고 하늘로 불려 오르시게 된 것은 당연하다. 지상생활을 끝내고 하늘에 오르셨다고 그분의 일이 끝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승천으로 세상 모든 사람이 당신을 알게 된 것처럼, 성모님은 이제 모든 이의 어머니가 되셨다. 예수님을 낳고 키우신 그분 어머니 그리고 제자들의 어머니요 동반자셨듯이 이제는 모든 이에게 그렇게 하신다. 성모님은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고, 예수님은 하느님께 가는 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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