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일(성 베르나르도) 완전해지기 위해서
기부와 자선 등 선행의 첫 번째 수혜자는 이웃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보람, 기쁨 외에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내적 풍요로움을 얻는다. 내 안에 선(善)이 조금 더 커졌기 때문일 거다.
선행도 처음이 어색하지 반복하면 습관처럼 된다. 이런 걸 덕(德)이라고 하던가? 그렇게 내 안에 덕이 쌓여가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익숙해진 선행은 더 이상 자신에게 감동과 기쁨을 주지 못해 더 큰 선행에 도전한다.
희생은 선행보다 더 큰 감동과 기쁨을 준다. 선행이 나에게 선물하는 그것과는 좀 다르다. 더 깊은 곳으로 나를 인도한다. 그리고 그것을 이웃이 모르면 그것은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 되고 그것은 나를 다른 세상으로 이끌어 들어간다. 그 세상을 신적인 세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선행이 건강한 중독성을 가진 것처럼 희생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선행과는 달리 희생을 결심하려는 문턱에서 이기적인 본성은 나를 언제나 머뭇거리게 한다. 이기적인 본성은 내가 희생하지 않아야 하는 온갖 합리적인 이유를 대며 그것을 거부하며 저항한다. 하지만 그 합리적인 이유들은 이기심과 자애심이 만들어낸 속임수였음이 희생 후에 밝혀진다. 이런 과정을 여러 번 겪어 익숙해질 것도 같은데 늘 새로운 것 같다. 인간의 아둔함인지 이기적 본성의 힘인지 잘 모르겠다.
모든 수행자는 가난하게 살았다. 빼앗긴 가난이 아니라 스스로 가난해진 청빈, 맑은 가난이었다. 외적이고 물질적인 가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적인 가난이다. 아무런 소유욕을 지니지 않아 마음이 텅 비고, 그러니 유혹도 없었을 것이다. 선행과 희생으로 받는 보람과 내적인 기쁨마저도 털어낸 것이다. 그렇게 깨끗이 치워진 방에 예수님께서 들어가셨고 그는 여기서 이미 완전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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