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9월 21일 학교

9월 21일 학교

 

하느님은 나를 봐주셨다. 참 많이 봐주셨다. 내가 남에게 들이대는 잣대로 평가됐다면 나는 이 집에서 몇 년 생활하지 못하고 쫓겨나야 했을 것이다. 만 탈렌트 빚을 탕감 받았으면서 백 데나리온의 빚을 갚지 않는 형제들의 멱살을 잡고 호통을 치는 나를 오늘도 또 봐주신다(마태 18,28).

 

  

그러고 보면 예수님의 말씀 중에 그런 엄격함과 철저함을 찾을 수 없다. 규칙이라면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라(마태 7,12)는 황금률과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이 전부다. 그런데도 나와 우리 안에는 수많은 규칙, 금령, 관습들이 있다. 어떤 것들은 내 몸과 공동체 속에 녹아있어 그게 뭔지도 모르는 것이고, 또 다른 것들은 나도 잘 지키지 못하면서 남들에게는 그것이 마치 하늘의 법인 것처럼 요구하는 것도 있다.

 

  

예수님은 나와 너 우리 모두를 부르셨다. 모두가 부족하고 모두가 죄인이다. 당신이 고백하신 그대로다.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태 9,13).” 선하고 의로운 이들을 불러 모아 빛나는 공동체를 만들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게 하시려는 줄 알았나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당신을 보내신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임을 가르쳐주시려는 것이었다. 당신처럼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라고 몸소 본을 보여주셨다. 공동체는 사랑과 자비를 배우는 학교이다.

 

  

예수님은 한 사람 한 사람 부르셔서 공동체를 만드셨다. 본당 공동체든 수도원이든 직장이든 가정이든 사람이 모인 곳은 어디나 다툼, 시기, 질투, 비난 등 죄가 있다. 죄인이 모였으니 거기에 죄가 있고 또 예수님도 계시다. 그분은 우리가 쏟아내는 모든 죄를 받아내 태워 살라버리시며 우리 모두가 그 불속에 계신 당신만을 바라보게 하신다. 그리고는 말씀하신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에페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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