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7일(성 이냐시오) 공감 교회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고 길거리에서 외치는 소리에 귀 기울여 회심하는 삶은 몇이나 될까? 내게는 그저 소음일 뿐이다. 개신교회를 홍보하는 지하철 광고판에 주임목사님으로 보이는 사람이 크게 외치는 사진 아래 정확한 문구는 기억나지 않지만 ‘고통 받는 이들은 예수님이 계시는 데 왜 힘들어하느냐’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예수님을 믿고 기도한다고 모든 어려움이 해결되지도 않고 고통이 사라지지도 않는다. 게다가 어떤 형태로든 교회의 녹을 먹는 사람들이 과연 세상살이의 무게를 짊어진 이들에게 고통을 말할 자격이 있을까?
세상살이의 무게와 고통을 이해할 수는 있어도 공감되기 쉽지 않다. 그것은 거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것이다. 사랑하는 이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덜어주고 싶어도 할 수 없다. 고작해야 기도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것 뿐 이다. 그것도 고맙다고 하니 참 민망하고 부끄럽다.
개신교회의 그 지하철 광고 문구는 맞고 또 틀리다. 물론 사제 수도자 목사가 그들의 고통을 덜어준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않는다. 반면에 예수님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실 자격이 된다. 그분은 고통이 뭔지 잘 아신다. 육체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심지어 배반까지 당하셨다. 하지만 예수님도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실 수는 없을 것 같다. 대신에 그들의 고통을 긍정하고 위로해주신다. 교회도 그들의 고통을 없애줄 수는 없어도 예수님을 따라 진심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위로하기를 바란다. 하느님 사랑과 의로움, 정의와 신앙의 이름으로 쓸데없이 그들의 어깨에 또 다른 짐을 얹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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