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6일 버림과 풍요
예수님을 감동시킨 사람들이 있었다. 자신이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실 자격이 없으니 그저 한 말씀이면 충분하다고 고백하며 자기 종의 치유해주시기를 청했던 백인대장(마태 8,10), 강아지 취급을 받아도 주님이 마음을 빵 부스러기만큼만 써주셔도 자신의 딸이 나을 것이라고 믿었던 이방인 여인(마태 15,28) 그리고 비록 보잘 것 없는 액수이지만 가진 모든 것을 헌금함에 넣은 빈곤한 과부였다(루카 21,4).
상황은 조금씩 달랐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예수님 앞에서 가난해졌다는 것이다. 내가 여는 만큼 들어오시고 나누는 만큼 채워주신다. 다 열면 나를 다 차지하시고 모든 것을 나누면 나의 모든 것이 되어주신다.
이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뛰지만 실제 생활에서 그대로 실천하는 것은 참 큰 도전이다. 수도자들도 노후를 걱정하는데 다른 교우들에게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라고 하는 말에 힘이 없다. 오늘날 사회복지제도처럼 그 당시 성전에서는 헌금 중 일부를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그 과부도 그 수혜자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의 전적인 봉헌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다. 그 봉헌의 본질은 자신의 삶을 하느님 섭리에 맡김이었다.
가난한 이들의 나눔이 더 가치가 있다. 부자는 남는 것을 나누지만 가난한 이는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나누어 자신은 전보다 더 가난해지기 때문이다. 성체성사의 삶이다. 부자들의 헌금과 나눔은 그 규모와 액수 때문에 사람들의 눈에 띄어 칭송을 받는 반면에, 가난한 이의 그것은 너무 작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느님을 감동시키는 것은 가난한 이의 나눔이다. 그분은 숨은 일도 보시고 당신이 직접 갚아주실 것이다(마태 6,4).
하느님은 이렇게 당신의 백성들을 가난하게 만드시지만 영적으로는 풍요롭게 채워주신다.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은 당신을 봉헌하여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 최고의 부자가 되셨다. 그분은 우리와 달리 아버지 하느님을 눈으로 직접 바라보시며 그분을 따르셨을 것 같지는 않다. 그분도 우리처럼 하느님을 믿으셨을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리시고 하느님께 의탁하실 만큼 믿으셨을 것이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가 당신의 그 버림을 따르고 그 풍요로움을 가지라고 초대하신다. 아... 어떻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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