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1월 29일 친밀감

1월 29일 친밀감

 

나에게 가장 가까운 분은 부모님이다. 그 관계는 그분들이 물리적으로 현존하지 않아도 소원해지거나 끊어질 수 없다. 이보다 더 가깝게 느끼는 관계는 없지만 사실 이보다 더 가까운 관계가 있다. 그것은 내 생명과 나 사이의 관계이다. 언뜻 생각하면 내가 사는 것 같지만, 나는 내가 살아있음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심장이 뛰니 움직이고 뇌가 활동하니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생명의 주관자를 하느님이시라고 믿는다. 그렇게 가까운데도 가깝게 느끼지 못하거나 잊고 지낸다. 이런 우리들을 위해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를 부모와 자식, 부부, 형제자매, 연인으로 비유해서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 3,34-35).” 

 

일반적으로 어린이에게 엄마는 하느님이다. ‘엄마~’하고 부르면 필요한 것이 생겨나고 문제가 해결된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명령을 따라야한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그 이상이다. 외아들까지 내어놓음으로 우리와 친밀함을 알려주셨다. 자식이 부모를 잊어도 부모가 자식을 잊을 수 없고, 죽고 싶을 정도 힘들어도 자식 때문에 그럴 수 없는 것이 부모이다. 그런데 우리 하느님은 외아들을 내어놓으셨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이사 49,15).” 그 사랑이 너무 크고 깊어서 그리고 너무나 가까워서 믿을 수가 없을 정도다.

 

세상살이에 가장 필요한 것 하나만 고르라면 그것은 친밀감이다. 어려움이 닥치고 마음이 무너졌을 때 찾아가고 숨는 곳, 사람, 마음이다. 우리 하느님은 질투하시는 하느님이라서(탈출 20,5) 그럴 때는 물론이고 언제나 당신만 부르고 찾기를 바라신다. 오죽하면 아들까지 내어놓으셨을까! 하느님의 마음이 이런데도 하느님보다 엄마가 더 가깝다. 우리 사정이 이러니 하느님보다는 아빠 아버지, 아버지보다는 엄마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다. 엄마 하느님이라고 부르기가 어색하니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이라고 부른다. 성모님의 단 한 가지 사명은 당신을 부르는 우리를 예수님과 친밀하게 해주심이다. 예수님은 하느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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