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6월 15일 하느님의 의로움

6월 15일 하느님의 의로움

 

가끔 광고나 영화에서 ‘너 자신을 믿어라.’라는 말을 듣는다. 자신감을 북돋아주려는 의도에서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사실 나는 나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다. 예수님 말씀대로 머리카락 하나 희거나 검게 할 수 없는데(마태 5,36) 무슨 근거로 자신을 믿을 수 있겠나? 

 

과도한 친절, 거창한 약속, 강하다 못해 폭력적인 주장들은 의심해야 한다. 참된 확신은 사실과 진실에 기초한 주장이고 그런 주장은 요란하지 않다. 반대로 확신이 없거나 거짓을 말하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인다.

 

하늘, 땅, 교회 모두 하느님의 것이고 나는 내 몸의 소유권을 주장하지만 그것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으며 매 번 속아 넘어가는 데 어떻게 그런 것들을 두고 맹세할 수 있겠나? 예수님 제자들도 죽더라도 스승 곁을 지키겠다고 맹세했지만 모두 도망쳐버리지 않았나? 정말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이런 나를 하느님은 사랑하시고 당신께 돌아오라고 부르신다. 바오로 사도는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2코린 5,21).” 아무 것도 아닌 내가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다. 거기에 나는 한 게 아무 것도 없다. 모두가 하느님께서 계획 실행 완성하신 일이다. 하느님의 의로움은 그분의 사랑이고 우리의 구원이다. ‘예.’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해야 한다(마태 5,37). 그렇게 대답해놓고서도 엉뚱한 일을 저지르니 ‘예’와 ‘아니요’에 덧붙이는 말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 틀림없다.

 

예수님, ‘예’와 ‘아니요’는 말 뿐이고 그대로 실천하지는 못합니다.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주님의 자비를 믿는 기쁨이 하느님이 의로우시다는 증거가 됩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하느님의 초대에 ‘예.’라고 대답하셨던 어머니의 신뢰와 믿음을 저에게도 전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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