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3일(성체성혈대축일) 황량한 곳에 사는 그리스도인
출연 연예인에게 음식을 만들어주고 평가받는 예능프로그램에서 그 연예인이 요리사의 음식을 먹고 아무 평가도 못하고 마치 얼어붙은 것 같이 가만히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잠시 후에 떨리는 목소리로 돌아가신 할머니가 예전에 해주시던 음식과 똑같은 맛이 나서 그랬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평가는 무의미해졌습니다. 예능의 웃음과 재미가 사라졌지만 그걸 불평하고 그렇게 만든 그를 비난할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겁니다. 누가 감히 그럴 수 있겠습니까?
먹고 마심은 반복되는 일상이고 당연하고 매우 익숙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지루해하거나 귀찮아질 때는 거의 없습니다. 그것은 너무 가까이 있어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는 약속을 그렇게 지키기로 하셨던 것 같습니다.그래서 빵과 포도주에 당신 전부를 담아 남겨놓으셨습니다. 먹고 마시지 않는 사람은 없고 그런 일에 놀라며 두려워할 사람도 없을 테니까요. 그렇게 하느님은 늘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와 하나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놀라 두려워하며 어려워하고 불편해하지 말기를 원하십니다. 보이지 않게 항상 우리 곁에 살아계십니다.
제일 맛있는 음식은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입니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최고의 요리사라는 뜻은 아닙니다.우리가 먹는 것은 음식만이 아닙니다. 그의 사랑과 희생도 함께 먹습니다. 엄마는 밥값을 받지 않습니다. 자녀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기쁨으로 밥값을 대신 하는 거죠. 그 기쁨은 오직 음식을 해준 사람과 그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지요. 그렇게 받아먹은 사람은 그것을 준 사람이 떠났을 때에 비로소 그 고마움을 알게 되고요.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니까 그 연예인 그 음식을 먹고 그렇게 눈물이 그렁그렁했겠죠.
희망과 위로 구원의 말씀을 듣고 병도 고치고자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며칠 씩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피곤해서 귀찮아질 법도 싶은데 예수님은 그들이 가여우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딱 제 마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말은 못하고 핑계를 대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군중을 돌려보내시어,주변 마을이나 촌락으로 가서 잠자리와 음식을 구하게 하십시오. 우리가 있는 이곳은 황량한 곳입니다(루카 9,12).” 틀린 말도 이해 못할 말도 아닙니다.그러나 예수님은 자기들 먹을 것도 부족한 제자들에게 황당한 분부를 내리셨습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루카 9,13).”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빵과 물고기는 예수님이 손수 마련하시고 제자들은 많은 사람들을 무리지어 앉히고 빵과 물고기를 날라다주기만 했을 뿐이었습니다. 먹이는 일은 하느님이 하십니다. 그들 덕에 제자들도 당분간 먹거리 마련하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을 겁니다. 음식이 열두 광주리에 가득했으니까 말입니다(루카 9,17).
남을 먹이는 일은 힘든 일이지만 그만큼 기쁜 일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은 그 기쁨을 우리에게도 나누어주고자 하십니다. ‘이곳은 황량한 곳입니다.’란 제자들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을 겁니다. 우리가 사는 곳도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랑은 고사하고 약속도 잘 지키지 못해 신뢰는 점점 사라지고 희망도 그런 것 같습니다. 거기에 그리스도인들이 살고 그들과 함께 그리스도 예수님이 사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고 일부러 티를 내고 떠벌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아 모시는 성체와 성혈이 특별한 재료로 만들어지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세상 사람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황량한 곳에서 위로 희망 그리고 사랑을 나눕니다. 그것들은 우리가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만드시고 그분이 우리를 먹여 살리십니다. 음식 안에 만든 이의 희생과 사랑이 들어있다면, 성체성혈 안에는 하느님의 죽음과 부활이 들어있다고 믿습니다. 작은 빵과 포도주가 어떻게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화함은 이해가 아니라 믿음의 대상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대상은 그 변화가 아니라 믿을 수 없는 하느님의 큰 사랑과 자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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