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7월 15일(성 보나벤투라) 물려받은 십자가

7월 15일(성 보나벤투라) 물려받은 십자가

 

어머니 살아계실 때 한 달에 한두 번 수도원에서 하시던 봉사가 당신에게는 큰 기쁨 중에 하나였던 것 같다. 어느 날 거실 바닥을 걸레질하시는 어머니를 보고 속상해서 안 해도 된다고 했더니 더러워진 걸레를 보여주시며 이런데 어떻게 청소를 안 하느냐고 반문하셨다. 그 순간 SF 영화에서 과거를 다녀오고 또 자동차가 로봇으로 변신하는 것처럼 나의 생각과 마음이 변함을 느꼈다. 말 그대로 눈 한 번 깜빡이는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온몸이 저 밑바닥에서 뒤집어졌다. 숨이 막히는 것 같은 고통이었지만 그 고통은 나에게 평화를 선물했다. 그것은 그분을 나의 어머니이기 이전에 수십 년을 저렇게 살아오신 한 여인으로 보게 된 것이었다.

 

그 여인에게 그 일은 자신의 존재가치였고 삶이었다. 그것을 저지하려고 했던 마음은 효심을 가장한 자기보호본능이었던 것 같다. 그때까지도 저 여인은 나의 엄마였던 거다. 나를 보호하고 먹이고 키워야 하는 의무를 내가 지어 준 존재 말이다. 그제야 탯줄을 완전히 잘라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분에게 자유로워지고 더 잘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이후부터 어머니가 오시는 날에는 일부러 청소할 부분을 남겨두었다. 그것은 그분의 기쁨이 되었을 것이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가치관과 삶의 방식은 그들이 만든 자녀의 육체에 고스란히 저장된다. 아니 새겨져서 내 안에서 절대적인 주권을 행사한다. 부모는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만을 주고자 하지만 거기에는 나쁜 것도 들어있다. 세례를 받고 수천 번 결심하고 노력해도 내 안에 그렇게 새겨진 것들은 좀처럼 바뀌지 않으니, 평생 잘 짊어지고 사는 수밖에.

 

절대적인 분은 하느님 한 분이시다. 그렇게 알고 믿고 고백해도 실제로 내 안에서 절대적인 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여전히 물려받은 그것들이다. 그것들을 완전히 지우고 복음의 가치를 새겨 넣음은 불가능할 것 같다. 물려받은 것들의 지배는 아마 여기서의 생이 끝나야 멈출 것이다. 그것들을 거슬러 복음의 가치를 따름은 죽는 것처럼 어렵지만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렇게 될 수 있다. 부모의 만수무강도 자녀들의 번영도 복음과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넘어설 수 없다. 부모 공경과 자녀사랑도 복음으로 정화되어야 한다. 부모이기 이전에 수십 년을 함께 살아 아주 잘 알고 존경하는 분으로, 내가 낳아 길렀지만 그들은 나의 소유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임을 깨닫고 인정해야 한다. 그러면 더 잘 공경하고 사랑할 수 있다.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 10,36-39).”

 

예수님, 당신은 나의 주님이요 하느님이시니 저를 다스려주소서. 아멘.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제가 물려받은 십자가도 잘 짊어지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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