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2일(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승격
마리아 막달레나는 이 땅에서 성모님 다음으로 예수님을 사랑했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의 사랑은 베드로가 고백한 사랑과는 좀 다르게 인간적인 색채가 더 짙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조심스럽게 해 본다. 그도 그럴 것이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일곱 마귀의 지배에서 벗어나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한 남자로서 예수님을 마음에 품었다고 하면 불경한 생각일까? 어차피 성모님을 제외하고는 그분을 하느님이라고 제대로 믿었던 사람은 없었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그 여인이 어떻게 살았는지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예수님을 시중들고 있었으니(루카 8,2) 세속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그의 존재가 예수님 공동체에게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다. 그것과 관련된 잡음이나 어려움과 관련된 여타의 이야기도 복음서에 소개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는 드러나지 않게 예수님의 공동체를 도왔던 것 같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분을 존경하고 사랑했을 것이다.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그의 사랑은 굳건했다. 예수님이 가장 고통스러우신 시간에 그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었고, 그것이 자신에게 화를 불러올 수 있었는데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성모님과 함께 주님의 십자가 곁을 지켰고(요한 19,25) 무덤까지 따라가 그분을 어디에다 모셨는지도 확인하였으며(루카 23,55) 안식일이 끝나자마자 예수님 시신에 향료를 발라드리려고 무덤으로 달려갔다(마태 28,1). 그가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보여주는 행동들이다.
그런 그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은 처음으로 나타나셨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을 보았지만 그분을 보지 못했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시는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서 돌아서서 ‘스승님!’하고 응답했다(요한 20,16). 성경은 정원지기 예수님을 보고 있는 마리아가 ‘돌아서서’ 예수님을 불렀다고 한다. 막달레나는 고개를 뒤로 돌린 것이 아니라 마음을 주님께로 돌린 것이다. 회개했다. 인간 예수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하느님 사랑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는 사도로 임명받은 적이 없지만 제자들에게 주님 부활의 소식을 전하는 사명을 부여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그를 사도들의 사도라고 불렀고 전례력으로도 기념일에서 축일로 승격시켰다. 그가 으뜸 사도라는 의미라기보다는 사도들에게 복음을 전한 사도, 그래서 사도들이 사도직을 수행할 수 있게 한 사람이라는 의미일 거다.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드러나지 않게 그 누구보다 예수님을 존경하고 사랑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의 최고의 인간적인 사랑을 신적인 사랑으로 끌어올려 주셨다.
예수님,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다고 해도 모든 것에 앞서는 것이 하느님 사랑입니다. 제 마음에서 연민과 사랑이 사라지지 않겠지만 거기에만 빠져 있지 않겠습니다. 이웃사랑을 하느님 사랑으로 끌어올려주소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회심과 회개의 길로 인도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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