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8월 6일(거룩한 변모 축일) 말씀 듣기

8월 6일(거룩한 변모 축일) 말씀 듣기

 

피정 봉사자가 엉뚱한 생각을 품지 않는 한 피정은 대부분 좋다. 피정 중에 하느님을 만났다기보다는 잘 쉬었기 때문일 거다. 그렇다고 거기에 마냥 머물 수는 없다. 집과 일터로 돌아가야 한다. 부활하신 예수님도 당신의 일터인 갈릴래아로 먼저 가시며 제자들도 그리로 오라고 분부하셨다(마태 28,10).

 

장보고, 밥하고, 청소하고, 풀 깎고 이것저것 정리하니 하루가 지났다. 수도원이라고 하루생활이 뭐 특별한 게 없다.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다. 피정 봉사한다고 하지만 정작 교우들은 강의나 프로그램보다는 그날 먹은 밥을 더 잘 기억한다. 그래도 봉사자들은 잘 준비한다. 그것이 봉사자의 일이고, 피정하는 이들을 정말 쉬게 만드는 분은 주님이시다.

 

신앙은 진통제도 환각제도 아니다. 도망치고 싶은 그곳이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나는 자리이다. 피정은 잠시 쉬며 재충전하는 시간이다. 세 제자가 그 산에서 스승의 참 모습을 보았던 것처럼 피정에서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다시 잘 본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듣는다. 그전에 수없이 들었던 그 말씀을 새롭게 또 듣는다.

 

기도는 말을 많이 함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조용히 잘 들음이다. 그 들음은 말씀을 머리와 가슴에 새김으로 끝나지 않고 그대로 실천함이다. 그것이 나를 변화시키고 구원한다. 하느님의 말씀은 존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살이 만만치 않고 세상사가 내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장차 내가 그리고 세상일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을 반드시 이루실 것임은 안다. 그러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은 주님의 말씀을 듣는 거다.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루카 9,35).”

 

주님, 말씀하소서. 이 무익한 종이 듣습니다. 그 말씀이 감동을 주지 않아도 게다가 무슨 뜻인지 몰라도 그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셔서 행복하셨으니 그 마음을 제게도 나누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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