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10월 17일(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10월 17일(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그 뜻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가장 잘 듣기 힘든 말인 것 같다. 비난 고소 고발은 많은데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말은 잘 들리지 않는다.

 

실제로는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그렇게 돼서 미안하게 됐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정말 나쁜 의도를 갖고 상대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는 많지 않을 듯싶다. 대부분 무지와 미숙, 착각과 오류 등의 실수 그리고 게으름의 잘못으로 이웃에게 크고 작은 고통을 준다.

 

그런데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함은 잘못된 신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에 더해 그에 따라 너무 엄격하고 열심히 살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도 그 이유 때문 일거다. 열심히 살지도 않은 이들을 불쌍하다고 무조건 용서하는 하느님은 그들이 섬기는 하느님과는 너무 달랐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사는 그들의 마음에 과연 하느님이 머무실 자리가 있었을지 의심스럽다. 하느님보다는 자기만족과 열심히 살지 않는 이들에 대한 비하와 비난만이 있었을 것 같다.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루카 18,11-12).’”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루카 18,13).’” 이 세리의 고백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 바리사이는 하느님께 감사드렸지만 그의 마음 안에는 하느님의 자리가 없었고 그 세리는 하느님의 집을 바라보지도 못했지만 그의 마음은 완전히 비워져서 하느님은 그 마음을 다 차지하실 수 있었다. 그 세리의 기도에 더해 ‘하느님 죄송합니다. 저를 믿어주셨는데 실망시켜드려 죄송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고백해야 하겠다.

 

아무리 벌을 받고 변상하고 배상해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은 것에 비교할 수 없다. 우리는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고 아무 잘못도 안 하며 살 수도 없다. 그런 의도가 아니어도 상대방을 아프게 한다. 이런 우리의 딱한 처지를 하느님은 불쌍히 여기시고 아드님을 희생시켜 영원하고 무한한 용서를 쌓아 놓으셨다. 우리는 그것을 믿고 감사하면 그만이다. 이것은 세리처럼 낮춘, 아니 자신의 처지를 안 이들에게는 큰 선물이다. 사실 이것 말고는 달리 용서받을 방법이 없다.

 

예수님,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린 것보다는 그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해서 주님께 죄송하다고 고백하지 못합니다. 한 노사제는 자신이 용서를 청할 자격도 없음을 너무나 잘 알아 이제는 그저 하느님의 자비를 바랄 뿐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의 낮추고 비운 마음을 닮겠습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그리고 그런 의도는 정말 아니었는데 마음의 상처를 입히게 돼서 이웃에게도 미안합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죄인들의 가장 안전한 피난처이시니 어머니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고 용서를 청하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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