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7일 영원의 그림자
대림 시기 2부 첫날 복음은 예수님의 족보이다. 제대로 읽기조차 힘든 많은 이름들이 거의 같은 형식으로 나열되어 있다. 그의 인생사를 아는 이름도 몇몇 있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고, 족보에 올리기 민망한 이름도 있다. 그리고 누가 누구를 낳았다고 기술했지만 예수님의 출생은 다르게 되어 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마태 1,16).”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은 게 아니라 마리아에게서 예수님이 태어나셨다.
사람들은 하느님의 축복을 물질적인 풍요와 권세로 연결 짓기를 좋아한다. 족보도 그렇게 사용되고 그러다 보니 거짓 족보를 만들기도 한다. 족보상 예수님은 위대한 다윗왕의 자손이다. 그것은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 속물 인간들을 위해서 하느님이 그렇게 안배하신 것 같다. 예수님도 시편(110,1)을 인용하시며 가르치셨듯이 그분은 다윗의 손자가 아니라 다윗이 주님으로 모셨던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다. “이렇게 다윗이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부르는데, 메시아가 어떻게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마태 22,45)” 하느님은 굴러다니는 돌멩이로도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만드실 수 있다고 했으니(마태 3,9), 예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과 솔로몬의 자손인 것은 순전히 세속적인 인간들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유한하지만 하느님은 영원하시다.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의 영원과 인간의 한계가 만났다. 영원이 시간 속으로 들어오셨다. 영원이란 매우 긴 시간이 아니라 시간이 없음이다. 흥미진진한 영화를 보거나 아주 좋은 음악을 감상할 때 그리고 아주 가끔 기도 안에서 시간을 잃어버리고 자기 자신마저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영원을 힐끗 본다. 영원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을까? 영원 속으로 들어가기를 바란다. 영원하신 하느님과 하나 되기를 바란다. 예수님이 그런 바람을 이루어주셨다.
물질의 축복과 권세는 하느님의 축복과 상관이 없다. 넘치는 재물이 재앙이 되고 권력은 손에 쥔 모래알이다. 그런 것이 하느님의 축복일 리가 없다. 내가 바라는 축복은 더 굳건하고 더 깊은 신앙이다. 그 믿음으로 여기서 영원의 그림자를 더 자주 보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 세속의 도전과 유혹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반듯하게 끝까지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마음이 맑아 사물과 사건의 실체를 더 잘 볼 것이다.
예수님, 주님 안에서 영원과 시간, 하느님과 인간, 자비와 죄가 만납니다. 지금은 하느님을 볼 수도 이해할 수도 없지만 주님의 모든 말씀이 진리이고 주님의 삶이 곧 하느님의 마음임을 믿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믿음의 길로 인도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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