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1월 5일(주님공현) 드러내기

1월 5일(주님공현) 드러내기

 

우리는 하느님을 알 수 없는데, 당신이 먼저 알려주셔서 알게 됐다.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아드님을 통해서 확실히 보여주시고 알려주셨는데도 우리가 아직도 하느님을 잘 모르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탓이다. 탓이라고 하지 말고 우리에게 주어진 도전 혹은 초대라고 하자.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다면 분명 왕족 출신으로 왕궁에 계셨을 테고, 선하시고 전능하셨으니 세상의 악인을 모조리 처단하셨을 것이라는 예상을 완전히 뒤집으셨기 때문이다.

 

그때만이 아니라 지금도 그런 도전과 초대는 계속된다. 하느님이 마구간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워계셨고, 죄인들 가운데서 줄 서서 세례를 받으셨다. 숨이 막힐 정도로 그렇게 낮아지셨지만 그분은 당신께 청하는 이들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주는 능력을 보여주셨다. 질병의 우울함에서 벗어나게 해주셨고 악령의 억압에서 시원하게 해방시켜주셨다. 게다가 그분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들, 어느 정치인의 말처럼 투명인간 같은 사람들의 친구가 되셨다. 그리고 죄인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 놓으셨다. 그러고 보니 그분의 그런 신적인 능력은 그 낮아짐 안에 있나 보다. 그분은 노자가 말한 물과 같으셨다. 물은 언제나 낮은 곳으로 내려가고 아주 작아서 어디든지 들어갈 수 있다. 그렇게 하느님은 아침이슬 내리듯 아무도 모르게 스윽 우리 안으로 들어오셨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임금을 상징하는 황금, 신성인 유향, 인류를 위한 희생인 몰약을 선물로 드렸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기억한다. 이를 두고 한 유명한 신학자는 황금은 우리의 사랑, 유향은 우리의 그리움, 몰약은 우리의 고통을 표현한다고 했단다. 그 신학자의 사유의 깊이를 모르겠지만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우리는 그런 사람, 친구, 지도자를 간절히 바라기는 하지만 그런 바람만큼 그분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아 괴롭다는 뜻은 아닐까? 내 안에 계신 분이 바로 그분이지만 내가 그분의 말씀을 듣지 않고 표현하지 않으면 그분은 나타나실 수 없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분을 모르는 척 하면 할수록 더 괴롭다. 그 사랑이 더 이상 나를 위하여 살지 않고 나를 위해 돌아가신 그분을 위하여 살라고 재촉하는 것 같다(2코린 5,15).

 

예수님, 주님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이시고 알아들을 수 없는 하느님 말씀의 통역이셨습니다. 이제 주님은 저를 통해서 당신을 보여주시며 말씀하려 하십니다. 아! 어쩌면 좋습니까?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저를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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