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3월 19일(성 요셉 대축일) 마음의 지혜, 양심의 목소리

3월 19일(성 요셉 대축일) 마음의 지혜, 양심의 목소리

 

공경하고 좋아하는 요셉 성인 축일이다. 성인에 대한 기록이 상대적으로 적은 데도 더 친근하게 느낀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셨지만 성모님은 사람이셨다. 성모님은 인류 구원이라는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원죄에 물들지 않은 채 잉태되어 태어나셨다. 하지만 요셉 성인은 딱 우리 같았다.

 

성인은 더 좋고 더 선하고 하느님 뜻에 맞갖은 삶을 꿈꾸고 고민하였을 것이다, 우리처럼. 성인은 의로웠으니 먼저 율법을 충실히 지키셨을 거다. 그런데 약혼녀의 혼외 임신이라는 큰 숙제를 받고선 괴롭게 고민하셨을 거다. 율법대로라면 마리아의 악행(?)을 세상에 알려 돌에 맞아죽게 해서 율법의 의로움을 이루어야 했다. 그러나 성인은 고심 끝에 조용히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했다.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마태 1,19).

 

율법을 충실히 따르는 게 의로움이었던 성인에게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은 정말 어려울 뿐만 아니라 두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감히 율법을 어겼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 죽이라는 율법 조항이 말하는 것은 사형이 아니라 간음하지 말라는 것이고 또 그래야 살 수 있다는 뜻이다. 하느님과 우리가 맺은 계약은 생명의 약속이다. 성인은 율법의 글자들 뒤에 있는 것 혹은 그것들이 가리키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마음을 읽고 힘들고 두렵지만 그것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성인은 마음의 지혜를 따랐다. 율법의 글자들이 가리키는 생명의 법, 하느님의 마음을 따랐다. 그것이 인간 요셉에게는 최고의 결정이었다. 아니 자신을 뛰어넘었다.

 

하느님은 성인을 더 높고 깊은 곳, 당신의 마음속으로 끌어들이셨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꿈을 하느님과 만나는 좋은 도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요셉 성인에게 약혼녀에게 일어난 일의 진실을 알려주실 때, 아기 예수를 이집트로 피신시킬 때, 동방박사들이 헤로데에게 되돌아가는 걸 막으실 때도 그들의 꿈에서 말씀하셨다(마태 1,20; 2,12.13). 그러면 나는 어디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나? 어떻게 마음의 지혜를 얻나? 꿈은 엉망진창이고 기도 안은 대부분 번잡스러우니 기도 안에서 들은 걸 모두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우길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마음의 지혜, 양심의 목소리를 듣는 건 어렵지 않다. 그대로 실천하는 게 어렵다. 그게 전부 하느님의 뜻은 아니겠지만 거기에 제일 가까울 거다.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거다.

 

예수님, 제 안에 부모님이 계시듯 주님 안에도 요셉 성인과 성모님이 계십니다. 두 분은 하느님께 순종하셨습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함이 지혜의 시작입니다. 부모님처럼 주님도 그렇게 사셨습니다. 하느님 사랑하시고 그래서 우리 모두가 사는 길을 끝까지 가셨던 주님을 죽음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주님을 따라 반듯하게 걸어가는 게 쉽지 않지만 주님께서 도와주시면 저도 반드시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주님의 길, 생명의 길로 인도하여 주소서.

요셉 성인이여 저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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