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훈] 4월 9일(주님만찬 성목요일) 예수님을 따라

4월 9일(주님만찬 성목요일) 예수님을 따라

또 아무 준비 없이 성삼일을 맞이하는 것 같다. 코로나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고 싶지만, 다른 해에는 사순 특강, 판공 고해성사, 전례 준비 때문이라고 핑계를 댔었다. 구원은 나의 노력과 희생의 대가로 주어지는 게 아니고, 뉘우쳐서 용서받는 게 아니며, 그럴 만한 자격을 갖추어서 하느님의 자녀로 입양된 게 아님을 새삼 되새긴다.

혹시 했지만 역시 부활절도 이렇게 보내게 됐다. 교우들 대부분은 성삼일 전례에 참석하지 못한다. 영성체를 못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성사 생활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전부는 아니지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살아계신 하느님의 은총을 느끼게 해주는 성사를 받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게 걱정스럽다. 사람은 하느님을 생각하지 않으면 금방 몸과 마음을 세속에게 빼앗기기 때문이다. 매체를 통해 미사를 시청한다지만 구경하는 것과 주님을 직접 내 몸 안으로 모시는 것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나.

하지만 우리가 성찬례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구원을 위한 주님의 고귀한 희생이 그친 것은 아니다. 성삼일 전례와 부활대축일 미사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예수님이 부활하지 못하시는 것도 아니다. 한두 끼 굶는다고 죽지 않고, 자주 씻지 못한다고 몸에서 악취가 나는 것도 아니다. 전례에 참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그 정신에 따라 사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우리의 삶이 성찬례가 되게 하는 거다. 미사에 참석할 수는 없어도 나눔, 양보, 배려, 친절, 희생의 기회는 주변에 항상 있고 보답 없는 선행과 희생의 기회도 가끔씩 도전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오늘 전례의 주제는 성체성사다. 이 작은 밀전병과 포도주가 어떻게 예수님의 몸과 피가 되는지 알 길이 없다. 그냥 믿는다. 체념이 아니라 신뢰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이해가 아니라 언제나 믿음만을 요구하셨다. 자연세계 안에 붙잡혀 사는 우리가 어떻게 초자연적인 하느님을 다 이해할 수 있겠나. 교회를 이끄시는 성령님을 믿는다. 목숨을 바치고 자신의 생애를 바쳐 나에게 신앙을 전해준 순교자들과 성인들을 기억한다. 그분들이 나만 못해 그렇게 바보같이 살았을까?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알아듣고 그대로 실천했다. 예수님이 사셨던 것처럼 살려고 애썼고 그분처럼 아낌없이 다 내주었다. 그리고 주님이 마지막으로 본을 보여주시며 분부하신 대로 더러워진 이웃의 발을 씻어주었다(요한 13,14).

예수님, 주님은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당신 손에 내주셨고, 또 주님이 하느님에게서 나왔다가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아셨지만(요한 13,3), 저는 아무리 애를 써도 그전에 제가 어디에 있었는지 떠오르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흙의 먼지 가루였고 무(無)였습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진흙 인형이 하늘의 법칙대로 남을 위해서 사는 게 쉽지 않습니다. 흉내만 낼 뿐입니다. 그러니 고작 그걸로 어떻게 하느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자격을 얻겠습니까? 이게 다 주님이 이루어놓으신 희생 제사 덕분에 그리된 것입니다. 잘 못하고 잘 안돼도 여기서 주님의 본을 따라 흉내라도 내며 살 수 있음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하느님 고맙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스스로 주님의 종이라고 칭하셨고 아드님은 하느님이시면서 종처럼 사셨습니다. 더러워진 이웃의 발을 씻어주는 종의 행동 안에 하느님의 마음이 담겨 있음을 믿고 깨닫게 도와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