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4월 26일(부활 제3주일) 나그네살이 (+ mp3)

4월 26일(부활 제3주일) 나그네살이

 

오늘 복음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이야기다. 그들은 십자가에서 허망하게 돌아가신 예수님을 보고 절망하여 예루살렘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는 중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과 동행하시며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다시 잘 설명해 주신다(루카 24,27). 그리고 그들은 저녁을 먹으며 주님께서 빵을 떼어 나누어 주실 때 비로소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고, 그러자 그분은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루카 24,30-31).

 

그들은 예수님이 그들을 해방시켜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분은 억울하게 그리고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으시고 권력자들의 손에 사형 당하셨다. 이 모든 것을 가까이서 지켜봤던 제자들은 혼란스러움을 넘어 절망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의 부활 소식은 그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했을 것이다. 그 소식은 슬퍼하고 절망하는 그들을 멋쩍게 만들었지만 그렇다고 그 여자들의 말을 믿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뒤죽박죽이 된 마음으로 스승님 말씀들을 더듬어 기억해내는 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은 발길을 돌려 떠나온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그 두 제자가 저녁나절 겪은 일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여정, 혹은 인생p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그것은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고, 절망에서 희망이 생기는 과정, 하느님의 도시인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며, 하느님께로 가는 여정이다.

 

예수님은 정말 특별했다. 차고 넘치는 카리스마를 지니셨지만 p 그분은 자주 군중을 피하셨다. 그들이 당신을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걸 알고 산으로 피해 가셨다(요한 6,15). 빌라도에게 증언하셨던 것처럼 그분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으니(요한 18,36) 그분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셨다. 베드로 사도는 그의 편지 곳곳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이방인, 나그네라고 부른다(1베드 1,1.17; 2,11). 그럴 리가 있나? 여기서 나고 자라고 이곳에서 배웠는데, 어떻게 우리가 이방인이고 나그네인가? 이렇게 묻는 건 복음적으로 사는 게 어떤 건지 아직 잘 모른다는 뜻이다. 복음적인 삶보다는 세속적인 삶이 익숙하고 편안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수도원에서 태어나거나 교육받지 않았고, 성당에서 지내거나 기도하는 시간보다는 세속에서 지내는 시간이 훨씬 많다. 이런 우리 자신을 비난하거나 나무라지는 말자. 제자들도 예수님의 특별한 행동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불편해했으며 심지어 배반하는 사람까지 나왔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언제쯤이면 여기 삶이 어색하고 불편해지려나.

 

지금 우리는 엠마오로 가는 그 제자들 같다. 우리 모두는 이런 현실을 처음 겪는다. 부정하고 싶지만 모든 정황들이 그럴 수 없게 한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예전으로 영원히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을 믿어야 하나? 예수님은 모으라고 하셨는데 모일 수 없다니 어떻게 하나. 그럼 공동체 생활은? 이방인도 환대해야 하는데 의심부터 하게 되니 어쩌면 좋나. 혼란스럽고 불안하다. 어떤 교우느네 미사에 참례 못하는 첫 몇 주는 어색하고 불안했지만, 그 시간이 길어지니 묘하게 편해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는 진짜로 불안해졌다고 한다. 의무를 이행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과 멀어지기 때문인 것 같다고 한다. 우리는 하느님을 붙잡아야 한다. 그분의 말씀으로 가슴이 뜨거워진 두 제자는 예수님께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하며 그분을 붙들었다(루카 24,29). 그래서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다. 하느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시지만 우리가 그분을 초대하여 자리를 내어드리지 않으면 그분은 우리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신다. 떠나야 할 이곳을 마치 영원히 머무를 것처럼 착각하지 말자. 주님을 꼭 붙들고 내 안으로 그리고 우리 안으로 모셔 들이자. 죽음에 사로잡혀 계실 수 없는 분(사도 2,24)과 함께 살자. 그분의 말씀으로 가슴을 따뜻하게 하고, 그분과 함께 이 세상의 나그네로, 그분을 따라 하느님의 나라를 찾아가는 순례자로 살자.

 

주님, 저는 뼛속까지 죄인입니다. 이는 제가 악하다는 뜻이 아니라 제 몸과 기억, 심리와 신경계에 세속성이 깊이 뿌리박고 있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바로 그런 저희들을 부르시고 당신의 나라로 초대하십니다. 여기서 무너지면 저기서 세워지고, 여기서 버리면 저기서 채워주십니다. 오늘도 다시 제 마음을 드높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아드님을 안으셨으니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마음을 새로운 희망으로 바꾸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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