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5월 6일 깊고 단단해지는 믿음 (+ mp3)

5월 6일 깊고 단단해지는 믿음

 

잠을 깨려고 밖에 나갔는데 고라니 울음소리가 들렸다.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아주 듣기 싫은 소리다. 캄캄한 밤에 고라니 울음소리를 처음 들은 사람은 아마 너무 놀라고 무서워 기절할지도 모른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이제는 ‘에이 쟤는 시끄럽게 왜 저래.’ 하며 투덜거리고 만다. 그게 고라니 소리인 줄 아니까 놀라거나 무섭지 않은 거다. 아니까 평화를 잃지 않는다.

 

요한복음에는 보다, 안다, 믿는다가 거의 같은 뜻으로 쓰인다. 예수님을 보았고, 그분을 알고, 그분을 믿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을 보았다고 그를 알지 못하고, 그를 안다고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 그를 알고 신뢰하게 되려면 많은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고 믿기까지도 그랬다. 그분의 죽음과 부활까지 체험했어야 했다.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라고 고백했지만 곧이어 예수님께 사탄이란 말까지 들으며 야단을 맞았고(마태 16,16.23), 죽는 한이 있어도 주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지만(마태 26,35) 밤사이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다. 주님께 대한 우리들의 앎과 믿음처럼 그들도 그랬다.

 

믿음이 약하다고 실망하고 나무랄 필요 없다, 믿음은 나무처럼 계속 자라는 것이니까. 죄를 지었으니 주님을 배반했다고 과대해석하지 말아야 한다. 태생이 죄인이니 죄에 익숙한 게 어쩌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울지 모른다. 그런 자신에 대해 과하게 실망하고 괴로워하는 건 숨은 교만이고 큰 교만이다. 그런 자신을 인정하고 그 모습과 마주할 수 없는 거다. 우리가 죄의 악순환에서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으니 하느님이 직접 그 안으로 들어오셔서 우리를 빼내주시는 거다. 그분은 우리를 심판하고 벌주시러가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다(요한 12,47). 우리를 어둡게 만드는 죄를 없애시러 오셨다. 하느님은 아들까지 내어주실 정도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이다(요한 3,16).

 

그리스도인 중에 예수님과 그분의 아버지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완전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도 없다. 그의 믿음이 완전하다면 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거고 그때는 믿음도 필요 없기 때문이다. 죄는 하느님과 멀어지고 하느님과 등지는 거다. 죄인이니까 죄짓지만 그렇다고 하느님을 등질 생각은 없다. 하느님을 안다지만 아직 잘 알지 못한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 곁에 계신다지만 그분을 본 적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믿는 것이고, 노력해봐야 맨날 그 자리 그 모양이니까 믿음을 더 크고 깊게 해달라고 청하는 거다.

 

주님, 사제는 주님의 몸을 들어올리기 전에 홀로 속으로 이렇게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주님께서는 성부의 뜻에 따라 성령의 힘으로 죽음을 통하여 세상에 생명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이 지극히 거룩한 몸과 피로 모든 죄와 온갖 악에서 저를 구하소서. 그리고 언제나 계명을 지키며 주님을 결코 떠나지 말게 하소서.” 미사에 참례한 모든 이가 이 아름다운 고백과 청원의 기도를 바쳤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곁을 떠날 마음이 조금도 없으니 제게 믿음을 더해 주소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살아계신 주님의 표지들을 발견하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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