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6일 가난과 연민의 만남
예수님 시대에 나병환자는 가족과 마을에서 분리되어 살아야 했다. 다른 사람이 모르고 자신에게 다가오면 소리를 질러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해야 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나오는 나병환자는 그 율법 규정을 깨뜨리고 예수님께 다가가 청해 치유를 받았다. 예수님도 그와 접촉하거나 말을 섞으면 안 되는 거였지만 그와 대화는 물론 그에게 손까지 대셨다(마태 8,3).
같은 내용을 두고 마르코 복음은 예수님이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리하셨다고 전한다(마르 1,41). 그의 흉한 모습도 그랬겠지만 그가 한 이 말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마태 8,2).”라는 그의 말에 예수님의 마음은 무너졌고 그 사이에 저절로 손이 어느새 그의 몸에 닿았을 것 같다. 무너진 신체의 일부처럼 그의 자존감도 그리돼서 치유해달라고 청하지도 못했다. 예수님은 그의 그런 마음을 읽으셨을 것이다. 가난과 연민이 서로 만나 구원이 이루어졌다.
그 나병환자가 율법에 따라 예수님을 멀리했다면 그는 나머지 시간을 그런 상태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율법을 깨뜨리며 구원자이신 예수님께 다가갔다. 그는 그의 무너진 신체와 마음, 그의 가난을 고백하여 하느님의 연민을 자극했고 하느님과 연결되었다. 어느 시인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율법이라는 맑은 유리를 통해 진리를 바라보지만 바로 그 유리 벽 때문에 진리를 만질 수 없다. 우리는 구경꾼이 아니라 그 진리와 만나고 만지고 소유하기를 바란다.
하느님은 언제나 열려 있지만 우리가 닫혀 있다. 죄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지만 사실은 죄인은 하느님과 분리되어야 한다는 율법 때문이다. 예수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말씀과 행동으로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그런데도 우리는 주님께 다가가기를 주저한다. 특히 이웃 안에 계신 주님께 더욱 그렇다. 그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려고 하면 내 안에서 어떤 놈이 많은 이유를 대며 그러면 안 된다고 말린다. 그 사이에서 갈등한다. 선한 것과 하느님이 바라시는 게 어떤 것인지 잘 알면서도 그 맑은 유리벽을 깨뜨리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참 불쌍하다.
주님, 전쟁 중에도 가난한 이들은 포도밭을 가꾸며 살았습니다(2열왕 25,12). 무자비한 침략자들도 그들은 남겨두었습니다. 주님을 따르려는 저를 방해하고 공격하는 이들을 물리치는 방법은 힘을 키우는 것도 좋은 무기를 마련하는 것도 아닙니다. 가난해지는 것입니다. 주님이 아니면 도와줄 이가 없음을 알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해주실 수 있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어머니의 마음은 죄인들이 숨어드는 곳입니다. 어머니가 죄를 용서하시는 게 아니지만 저희는 그 안에서 마음을 추스르고 자신의 가난함을 고백할 용기를 찾습니다. 저희를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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