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8일(전교주일) 십자가 길
얼마 전 한 유명한 트롯가수가 그의 비대면 콘서트 중에 한 말들 때문에 큰 화제가 되었다. 정치인들보다 훨씬 낫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자신이 부끄럽다고 말하는 일부 정치인들도 있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테스형이라고 부른 노래는 신선한 충격이었던 것 같다. 그 노래에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라는 부분이 있는데, 이 노랫말이 이 노래와 그가 노래 사이 한 말들을 요약하는 것 같다.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친 몸과 마음에 공감하고 위로하는 공연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감하고 위로하는 일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거니와 사회의 불의와 부조리를 고발하고 공무원이나 정치인 혹은 각계 지도자들을 비난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감과 위로를 넘어 정의와 평화를 위해 실제로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 하느님의 자녀이고 예수님의 형제자매인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다. 평화롭게 사는 사람도 세상사 달관한 초인이나 도사 같은 사람도 아니다. 예수님은 산속이나 광야에서 혼자 살지 않으셨다. 그분은 불의한 세상 한복판에서 사람들 속에서 사시며 그들의 이웃, 좋은 이웃이 되셨다. 그분의 제자인 그리스도인들도 그렇게 산다. 모두가 정치인이 될 수 없고, 모두가 수도자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자리에서 나의 십자가는 물론이고 세상의 십자가도 나누어진다. 아파하고 슬퍼한다. 그 슬픔이 주님의 그것이라면 우리는 하느님의 위로를 받아 행복할 것이다(마태 5,4). 넘어져도 또 일어나 주님의 말씀을 다시 듣고 실천하려고 애쓴다. 잘 못하거나 실패해도 괜찮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 사실 세속적인 눈으로 보면 예수님은 실패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진다고 끝까지 믿으셨다. 그렇게 예수님은 세상을 이기셨고(요한 16,33), 당신이 하실 일을 다 하셨다(요한 19,30). 그분은 행복하셨다.
정의와 공정을 세우고 평화를 이루는 길은 정말 험난하다. 그런 우리들의 어깨에 세상은 십자가를 얹어줄 것이다. 예수님에게 그랬고 그분의 제자들과 세상의 다른 의인들에게 그랬다. 그 십자가를 지는 게 반갑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못할 일은 아니다. 그런 게 두려워서 하느님을 닮아 하느님처럼 살 수 있는 자신을 자신 안에 가두어두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다. 세례자 숫자를 복음화율이라고 환산하는 건 의미 없어 보인다. 숫자가 아니라 세상 속으로 녹아들어 이웃들이 살맛 나게 하고, 비판과 비난보다는 희망을 말하며, 빛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스도의 빛 말이다.
주님, 비난은 쉽고 평화는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십자가를 지셨겠죠. 제가 주님을 따라 십자가를 진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진리와 구원의 길을 따라가는 마음은 행복합니다. 머리로는 헤아릴 수 없고 오직 그렇게 따르는 사람만이 누리는 기쁨입니다. 세례의 은총과 축성의 힘으로 다시 일어나 주님을 따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이 이름으로 어머니를 부를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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