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0일 마음 넓게 쓰기
새벽에 고양이 밥을 잔뜩 줬는데 아침에 보면 밥그릇이 깨끗했고 밥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날이 추워지니 많이 먹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내가 없는 사이 하얀 녀석이 와서 그렇게 깨끗하게 비운 것이었다. 앞마당에 떡하니 자기 볼일까지 봐놓곤 해서 그 녀석이 미웠다. 게다가 하얀 털에 눈까지 빨개서 TV에서 보던 구미호가 떠올라 더 싫었다. 어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밥그릇 주변을 서성대는 그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도망가지 않고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구미호보다는 훨씬 귀여웠고 불쌍해 보였다.
연민에 대해 또 한 번 생각한다. 바리사이 집에서 그것도 안식일에 예수님은 수종을 앓는 환자를 치유하셨다. 예수님은 당신 안에서 흘러넘쳐 나오는 연민을 어찌하실 수 없으셨을 거다. 예수님께 그는 우물에 빠진 아들이나 소와 같은 존재였다(루카 14,5). 그들은 밖에서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거기서 빠져나올 수 없다. 그날이 안식일보다 더한 날이어도 그리고 그런 일을 하면 큰 벌을 받는다고 해도 아들을 구하고 소를 꺼낼 것이다. 그게 하느님 앞에 선 우리 처지이고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마음이다.
그런데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길에서 딱한 모습으로 구걸하는 이에게 주머니를 열고 TV를 통해 중병에 걸린 아이 치료비 때문에 우는 부모들에게 성금을 보낸다. 때로는 구걸하는 이들의 뒷얘기를 들어 씁쓸할 때도 있지만 그 당시 연민에 따른 내 행동에는 후회가 없다. 내가 올바르게 식별하지 못한 게 아니라 그가 나를 속인 거니까. 우리 안에 가장 원초적인 마음인 연민을 이용해 속이는 자를 이길 수 없다. 그 마음은 매우 순수하기 때문인 것 같다. 악행을 저지르는 이도 지니고 있는 마음이다.
예수님의 연민과 우리의 연민은 같은 걸까? 아니 많이 다르다. 자신이 속은 걸 알면 몹시 분노하며 그런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 길에서 그런 사람을 마주쳐도 의심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당신에게 못질을 했고 모욕하는 이들을 위해서 용서해달라고 아버지 하느님께 간청하셨다. 당신에게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이었다(루카 23,34). 예수님이 지니셨던 아버지 하느님의 마음과 우리의 연민은 많이 다르다. 아니 차원이 다르다. 우리는 이런 분의 자녀이고 이런 분을 세상에 전한다. 마이크가 아니라 몸으로 그리고 마음을 더 넓게 쓰려고 애쓰는 노력으로 전한다.
예수님, 제 안에는 연민도 있고 상처받아 더 인색해진 마음도 있습니다. 인색해진 마음을 넘어서려고 노력하지만, 실천의 문턱에서 자꾸 넘어집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그 문턱을 넘어설 겁니다. 주님께서 원하시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그래야 제가 그 허다한 죄들을 정말로 용서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아드님의 마음을 배우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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