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6일 무료 임대 중
오늘 복음 말씀은 불의한 집사 비유(루카 16,1-8)로 알려져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언뜻 들으면 예수님이 그 집사의 불의한 행동을 칭찬하시는 것 같다. 그러실 리가 있겠나. 그는 집사 자리에서 쫓겨나게 됐으니, 어차피 자신에게 필요 없는 그 알량한 권력을 미래의 자신을 위해서 이용했다. 주인에게 빚진 이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어 나중에 그들이 자신을 환영하게 했다. 그래서 그는 살 수 있게 되었다.
하느님을 믿었든 안 믿었든 모든 인생의 종착점은 하느님 앞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늘의 시민이다(필리 3,20). 우리는 십자가의 주님이 알려주신 대로 하느님을 알고 믿고 아버지라고 부르며 산다.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임시 대여해서 사용하고 있는 거다. 재물은 물론이고 몸도 재능도 모두 그렇다. 하늘나라에서는 이런 것들이 아무 소용이 없다.
일반적으로 모든 선택의 기준은 자기 자신이다. 자신에게 이로운지 해로운지 따지며 선택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여주신 인생은 정반대였다. 남이 나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해 주라(루카 6,31)고 하셨다. 예수님은 당신 말씀대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 우리는 죽고 싶지 않고 살고 싶다. 영원히 살고 싶다. 그렇다고 이렇게 죽 사는 건 분명 아니고 참 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언제나 살아있기를 바란다.
돈은 똥 같다고 말한다. 밭에 뿌리면 거름이 되고 쌓아두면 악취가 나기 때문이다. 나의 생명도 비슷하다. 그걸 지키겠다고 아끼고 보호하느라 급급하면 어느 날 예상도 못 한 시간에 한 방에 훅 꺼져버린다. 사람이 온 세상을 다 얻으면 뭐하나 자신이 사라졌는데(마르 8,36). 참 어리석고 허망한 인생이다. 반대로 재물과 재능을 계속 퍼서 이웃에게 주면 그 안에 있는 다른 생명, 참 생명, 하느님의 생명이 자란다. 겨자씨처럼 작은 믿음이지만 자라면 새들이 숨을만큼 커진다(루카 13,19). 퍼내면 채워지고 내주면 자란다. 내 인생은 내 것이 아니라 잠시 빌려 쓰고 있는 거다. 무료 임대 중이다, 하느님께 가기 위해서 그리고 영원히 살기 위해서.
주님, 시간이 정말 빠릅니다. 뭐 큰일을 할 줄 알았지만, 계획만 짜고 상상만 하면서 우물쭈물 머뭇머뭇하다 보니 시간이 휙 가버렸습니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 없어져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주님 말씀을 기억합니다(요한 12,24). 큰일 하겠다고 준비하고 기다린다고 자신을 속이지 않겠습니다. 저 같이 작은 사람에게 그런 큰일을 맡기실 리 없습니다. 오늘 하루 주어지는 대로 선하고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합니다. 그렇게 제 생명을 주고 저는 주님께 한 발작 더 가까이 갑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쓸데없는 미련에 마음이 혼란스러워지고 시간만 낭비하지 않게, 단순하고 오롯한 마음을 가르쳐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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