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11월 15일(연중 33주일, 세계 가난한 이의 날) 아름다운 사람 (+mp3)

11월 15일(연중 33주일, 세계 가난한 이의 날) 아름다운 사람

 

오늘 잠언은 훌륭한 아내는 어떤 사람인지 말한다. “한 손으로는 물레질하고 다른 손으로는 실을 잣는다. 가난한 이에게 손을 펼치고 불쌍한 이에게 손을 내밀어 도와준다. 우아함은 거짓이고 아름다움은 헛것이지만 주님을 경외하는 여인은 칭송을 받는다(잠언 31,19.20.30).” 가난한 이에게 손을 펼치고 불쌍한 이에게 손을 내밀어 도와주는 이가 훌륭한 아내이다. 그런 사람이 신랑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께 합당한 신부다. 그리고 그는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고 창조주의 모습을 세상에 드러낸다. 오늘 제4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선택한 메시지 주제도 집회서 7장 32절의 말씀이다. “네 복이 완전해지도록 가난한 이에게 네 손길을 뻗어라.”

 

사람은 하느님의 모습을 따라 만들어졌다. 사랑이신 하느님을 따라 사람은 사랑한다. 연민은 사랑의 시작이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크든 작든 연민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누구나 다 연민을 실천하지 않는다. 누구나 하느님의 모습을 가졌지만 모두가 다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모습을 고스란히 남김없이 다 보여주셨다. 은혜를 모르는 죄인들을 위해서도 당신 생명을 내놓으셨다.

 

이슬람 교인들은 이런 믿음이 있다고 한다. 죽어 큰 강을 건너는 날에 자신이 살아 있을 때 키우고 돌봐주었던 동물들이 강 저쪽에서 일렬로 서서 자신을 맞이한단다. 이는 혼인미사 마지막 축복의 내용과 비슷하다. ‘이 부부가 이 세상에서 하느님 사랑의 증인이 되어, 고통과 가난을 겪는 이들을 너그러이 보살피게 하소서. 그리하여 언젠가는 그들이 하느님의 영원한 장막에서 이 부부를 반가이 맞이하게 하소서.’ 혼인 주례할 때마다 이 부분에서 울컥해서 곤란해지곤 한다. 부부의 삶이 아니라 아름다운 삶이 주는 감동 때문이다.

 

장사의 목적은 이문을 남기는 것이고 가장 큰 이문은 사람이라고 했다. 살아 있을 때, 내가 무엇인가 할 수 있을 때 이문으로 남겨놓은 사람들이 하늘나라 문 앞에서 나를 위해서 증언해 준다. 특히 도와준 걸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의 나에 대한 증언이 심판관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다. 그때 나는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으로 판정받는다(루카 12,21). 쌓아놓고 흡족해하던 재물은 그때에 아무 쓸모 없는 휴지조각이나 돌멩이가 된다. 우리는 하느님을 닮아 모두 연민을 지녔지만 모두가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 모두가 하늘나라로 초대받았지만 모두가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게 아니다.

 

모두가 언젠가 죽지만 자신의 마지막 날을 아는 이는 없다. 그러나 모두에게 그날이 밤도둑처럼 들이닥치지 않는다(1테살 5,2). 가난한 이에게 손을 뻗치는 이는 지혜를 얻어 그에게는 모든 날이 늘 환한 대낮이다. 그런 이에게 하느님과 마주 않아 셈하는 날이 어떤 날인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안다. 교회가 사회복지 기관은 아니지만 가난한 이들을 돌보지 않으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따르고 하느님을 섬긴다고 주장한다면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예수님, 주님은 완전한 사람, 아름다운 사람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을 따라 살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제가 진정으로 바란다면 가난한 이웃을 찾아다니기 전에 오늘 제가 만나는 사람, 함께 사는 사람에게 잘 해주고 필요한 도움에 민감하게 될 겁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하늘에 불려 올려가셨으니 저도 여기서 어머니처럼 살게 도와주소서. 아멘.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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