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11월 20일 내쫓아버려라 (+mp3)

11월 20일 내쫓아버려라

 

어느 날 예수님은 성전에서 큰 소동을 일으키셨다. 소위 성전 정화 사건으로 불리는 이 이야기는 네 복음서가 모두 전하는 것을 보면 실제로 예수님이 이런 일을 하셨을 것이다(마태 21,12-17; 마르 11,15-19; 루카 19,45-48: 요한 2,13-22).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쫓아내셨다. 병자들과 가난한 이들을 대할 때의 온화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폭력적으로 그들을 내쫓으셨다.

 

성전은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는 곳이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곳이기도 했다. “예수님께서는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다(루카 19,47).” 예수님이 성전을 사랑하셨던 이유는 그 웅장함과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거기에 하느님의 말씀이 있고, 거기서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들의 일상으로 번역해서 전하셨기 때문이었을 거다. 그것이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고 당신이 사는 목적이었다. 그러니 그때만큼 행복하실 때가 없었을 것이고, 그런 곳이 장사꾼의 소굴로 변해가는 걸 도저히 참을 수 없으셨을 거다. 성전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곳이다.

 

예수님은 그날 너무 화가 나서 장사꾼들을 모두 내쫓으셨다. 더러운 영들을 내쫓으실 때처럼 그렇게 하셨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마태 10,1). 그분의 거룩한 분노와 의로운 폭력 안에는 일말의 타협이나 용서 따위는 전혀 찾을 수 없어 보인다. 우리들처럼 옳은 이야기를 해놓고 괜한 말을 했다고 후회하거나 자책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선과 악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분의 선함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분 안에 하느님의 말씀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의 삶이 곧 하느님의 말씀이다.

 

우리는 성찬례 안에서 바로 그분을 만나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받아 모신다. 성당을 짓는 데 많은 비용이 들고 제단을 꾸미는 데도 그렇다. 제대를 화려한 꽃과 아름다운 초들로 장식한다. 하지만 정작 그것들 위와 그 사이로 들어 높여지는 예수님은 200원짜리 누룩 없는 빵이다.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해봐야 그게 뭔지도 잘 모르고 말하는 10분 내외의 사제의 강론이다. 그것은 성당과 제단의 화려함에는 비교될 수없이 소박하다. 그런데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방식을 바꾸지 않으시는 걸 보면 하느님은 당신을 우리에게 전해주시는 데 그런 것들이면 충분하신 것 같다. 우리는 성당에  예물을 바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더 하느님 말씀을 듣고 배우기를 그리고 그분을 받아 모시기를 바란다.

 

예수님, 주님 같은 확신을 갖게 주님의 마음을 제게 주십시오.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즉각적으로 구분할 수 있게 해주시고, 제 삶과 일에서 비본질적인 것들을 과감하게 조금의 미련이나 주저함 없이 떨어내게 도와주소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주님의 길로 인도해 주소서. 아멘.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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