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12월 6일(대림 제2주일) 치료 시간(+ mp3)

12월 6일(대림 제2주일) 치료 시간

 

가끔 오래전 죄를 다시 고백하는 교우들을 만난다. 특별한 시기나 중요한 일을 앞두고 총고해를 하는 건 좋다. 그러나 고해성사를 받았지만 용서받지 못한 것 같아 불안해서 반복적으로 고백하는 건 좋지 않다. 고해자가 그러는 이유는 우리 모두 잘 안다. 문득 혹은 자주 그 기억이 떠올라 괴롭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하느님은 다 용서하셨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리고 또다시 그 기억이 떠올라 힘들거든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을 드높여 이런 자신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느님께 감사하고 찬미하는 기도를 간단히 바치라고 권고한다.

 

죄는 용서받았지만 상처 치유에는 시간이 걸린다. 베인 손가락도 완치되려면 소독 연고 밴드를 수차례 반복하고 불편함을 견디어야 하는데 마음과 영혼의 상처는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나. 남이 나에게 준 상처는 정당한 분노로 잠시 위로받고 용서를 결심하며 조금 더 거룩해진다. 하지만 죄는 내가 나에게 입힌 상처니 남을 탓할 수 없다. 후회와 부끄러움은 온전히 내 몫이다. 그런 자신을 마주하는 게 정말 괴롭다. 그때로 되돌아갈 수 없거니와 그렇다고 해도 안 그럴 자신이 없으니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한다.

 

그 괴로움을 잘 견디어야 한다. 치료하시는 거다. 치료 시간은 본래 길지 않은데 길어지는 것은 환자가 그 상처를 자꾸 감추기 때문이다. 죄는 감추면 안에서 커지지만 드러내면 사라진다. 아들까지 내어주시는 하느님 앞에서 그 죄는 아무것도 아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오너라, 우리 시비를 가려보자. 너희의 죄가 진홍빛 같아도 눈같이 희어지고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이사 1,18).”

 

곧은길과 평지로 가야 빠르다. 세례자 요한을 비롯한 예언자들은 길을 곧고 평평하게 만들어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들에게 잘 들어가게 했다. 요한은 광야에서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마르 1,4). 광야는 고독한 곳이고 하느님과 나 단둘만 있는 곳이다. 어느 누구도 그 시간과 그곳을 피할 수 없다. 죄스런 자신을 마주하는 건 괴롭지만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입는 은혜로운 시간이다. 우리 하느님은 정말 참 좋은 분이시다.

 

주님, 의도적으로 죄를 말하지 않지만 있는 걸 없다고 가리거나 감추지 않습니다. 때가 차서 제가 견딜만한 힘이 있을 때가 되면 주님은 그 상처를 보자고 하십니다. 여전히 아프고 괴롭지만, 저의 믿음을 새롭게 하며 주님 앞에 섭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으로 아드님이 저에게 주실 은총이 얼마나 큰 것인지 믿고 알게 도와주소서. 아멘.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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