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12월 13일(대림 제3주일, 자선주일) 성령의 불(+mp3)

12월 13일(대림 제3주일, 자선주일) 성령의 불

 

대림 3주일의 주제와 정서는 기쁨, 위로, 희망이다. 성탄을 맞이하기 위해 보속하고 고행하는 교우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전한다. 조금만 더 힘내라며 기운을 북돋아 준다. 그래서 미사 입당송은 ‘기뻐하여라. 거듭 말하니,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여라. 주님이 가까이 오셨다(필리 4,4.5).’이고, 사제는 장미색 또는 분홍색 제의를 입기도 한다.

 

사제나 수도자가 아닌 대부분의 교우들은 전례력에 따라 생활하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은 전례력을 들추지 않아도 우리 생활 자체가 오늘 전례의 주제를 간절히 바란다. 오늘만이 아니라 계속 그랬다. 교리적으로 우리는 기뻐하는 사람들이다. 말 그대로 기쁜 소식인 복음을 들었기 때문이다.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교우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형제 여러분,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6-18).” 그런데 이 권고를 뒤집어보면 그들은 기쁘지 않았고, 기도하지 않았으며, 감사할 줄 몰랐다는 뜻이다. 하느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그렇게 살기를 바라시는 데 말이다.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기쁜 일도 없고, 기도해도 나아지지 않고, 기쁜 일이 없으니 감사할 일도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나. 이런 반감을 갖는 우리에게 바오로 사도는 바로 그다음 절에서 마치 대답하듯이 또는 살짝 꾸짖듯이 이렇게 대답하는 것 같다.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 세례와 견진 성사를 통해 우리는 성령의 인장을 받았다. 그것은 우리의 내적인 변화를 넘어 새로운 탄생이다. 그것이 외적으로는 아주 소박한 예절이었지만 그것이 지시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날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났다. 비록 믿음이라는 아주 빈약한 증거밖에 없지만 마음과 삶을 바꾸는 데 그보다 더 강력한 도구는 없다. 우리는 믿는 대로 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대로 살았다면 나는 태어나지 않았을 거다. 그랬다면 이미 오래전에 사람들이 에덴동산으로 다 돌아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당에 못 간다고 신앙을 버린 게 아니다. 한 번 새겨진 하느님의 인장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어쩌면 요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 크게 신앙고백을 하라고 도전받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성당 울타리 안에서만 하던 신앙고백을 그 울타리 밖에서 더 크게 고백하라고 말이다. 유아기를 벗어나기 위해 엄마 젖을 떼고 단단하고 거친 음식을 먹는 중인지도 모른다. 단단한 음식이란 이 답답하고 불안한 현실 속에서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기억하고 실제로 도와주는 것이다. 실천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거다. 믿음은 환상이 아니고 현실이다. 하느님이 도와주고 구해주실 것이라고 믿는 이들은 바른길을 반듯하게 걸어갈 것이다. 그런 이들이 할 일이란 이 시간들을 잘 참고 견디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믿는 이에게는 견딤과 기다림은 곧 희망이기 때문이다.

 

주님, 연일 우울한 소식을 듣습니다. 그러나 보니 쓸데없는 상상으로 불안해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주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저희와 함께 있겠다고 하신 약속을 떠올립니다. 아직 그것이 무슨 뜻인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저희를 도와주시고 구해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 그 인사말을 깨닫게 도와주소서. 아멘.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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