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12월 26일(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깨어있기(+mp3)

12월 26일(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깨어있기

 

고양이 밥 주는 게 하루 첫 일과가 되어버렸다. 처음에는 주먹만한 녀석들이 오물오물 먹는 게 신기했고, 그다음에는 쑥쑥 자라는 거 보는 게 재미있었다. 그런데 어느 정도 크고 나니 이런저런 재미는 없어지고 강아지들처럼 꼬리를 흔들며 반기지도 않으니 밥 주는 게 그냥 일과가 된 것 같다. 요즘은 얼어버린 물을 녹여주려니 일이 하나 더 늘었다.

 

그 녀석들이 내 수고를 아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런 게 일상이 된 건 내게는 고마운 일이다. 덧붙은 수고가 일상으로 넘어왔다. 나도 두 사람의 그런 변화로 살 수 있었다. 요즘은 아이를 둘 이상 낳아 키우면 애국자라고 하던 데 예전에는 삼형제 오남매 칠남매를 어떻게 낳아 키울 수 있었을까? 존경심이 저절로 생긴다. 수고를 일상으로 변화시킨 게 아니라 자신을 비우고 버려서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른 모습의 순교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은 파격을 넘어 파괴였지만 당신에게는 그런 게 자연스러웠고 그분에게 은혜를 입은 이들에게는 일생의 행운이었다. 아무런 대가와 보답을 요구하지 않는 그분의 완전한 사랑이 사람들을 살렸다. 그 수혜자들은 기뻐했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미워하고 박해했다.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 이 이상한 일이 오늘도 우리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

 

첫 순교자인 스테파노 성인이 하늘이 열렸고 예수님이 보인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았다(사도 7,56-57). 나라면 어디 하늘이 열렸고, 예수님이 어떻게 생기셨느냐고 물었을 것 같다. 요즘 우리 사회 안에는 편 가르기가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 내 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거나 심지어 악으로까지 규정하는 것 같다. 이런 곳에 예수님이 오셔서 그때처럼 사시면 그분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드러나고 그들은 또 폭행을 저지를 것이다. 폭력이 아니고서는 진리에 대항할 수 없다. 하지만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사랑은 언제나 승리하고 끝까지 남는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그랬으니 그분의 제자들인 우리에게도 그렇게 한다. 정말 깨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 예수님을 박해하는 사람들 가운데 있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예수님, 아침기도 때마다 ‘(주님은) 우리 원수들에게서 또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들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리다(루카 1,71).’라고 노래합니다.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들’이라고 수만 번 노래했으면서 그걸 ‘우리가 미워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고, 그들에게서 구해주신다는 걸 그들을 심판하고 벌주신다고 이해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주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늘에 계신 아버지처럼 완전해진다고 하셨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다름과 불편함을 미움이라고 착각하지 않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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