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나해 1월 6일 공동체(+MP3)

나해 1월 6일 공동체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가르치고 배불리 먹이는 큰 행사를 치르시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셨다. 그 사이 당신은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좀 이상하다. 보통 다 함께 일을 마무리하거나 아니면 어른이나 주인공은 먼저 자리를 뜨고 아랫사람들이 뒷정리를 하는데 말이다. 그 이유는 거기에 산이 있었고 예수님은 그곳에서 홀로 기도하실 계획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마르 6,46).

 

예수님은 기도하셨다. 하느님의 아드님이 기도하셨다. 그분의 집은 본래 하늘이었는데 잠시 파견 나오신 것이었다. 우리 하느님은 공동체다. 세 분이 한 분으로 살아계신다. 사람은 하느님의 모습을 따라 만들어졌다. 태초에 하느님은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창세 1,6).”고 결정하셨다. 그래서 우리도 함께 살고 하느님을 임마누엘이라고 부른다. 임마누엘은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이다(마태 1,23). 하느님은 나와 함께 계신다는 뜻이 아니다.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니 나와도 함께 계신다. 하지만 나와 함께 계신 분이 곧 우리와 함께 계신 그분은 아닐 거다. 우리는 어쩌면 하느님을 임마누엘이라고 부르지만, 그분은 나와 함께 또는 내 안에 계신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예수님이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신 것도 우리는 공동체라는 뜻이다. 세 분이 사랑해서 하나이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하라는 뜻이다. 당신을 보내신 아버지 하느님을 죽기까지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친구들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는 가장 큰 사랑(요한 15,13)을 목표로 삼고 살라는 뜻이다.

 

사랑을 계명으로 주신 건 함께 사는 게 쉽지 않다는 의미다. 혼자 살면 편하지만 성장하지 못한다. 혼자 살기를 좋아하면서도 여러 매체를 통해서 다른 사람 사는 걸 들여다보고 또 서로 소통하자고 한다. 편하게 성장하는 길은 없다. 많은 고난을 겪어낸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넓은지 그리고 인생을 이해하는 깊이가 다른 이들과 어떻게 다른지 잘 안다. 지금 내가 아니라 우리가 다 함께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런 우리에게 주님은 말씀하신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르 6,50).” 여기서 ‘나다’는 하느님이 모세에게 가르쳐주신 당신의 이름이다(탈출 3,14). 하느님께는 현재만 있으니 그분은 지금 여기, 우리가 고통을 겪는 한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사신다. 그것이 하느님이 우리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신다는 뜻은 아니다. 그 대신 그분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믿는 우리는 이 어려운 시간을 잘 견디어낼 거라고 이미 알고 있다.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니 그분은 나와도 함께 계신 거다.

 

예수님, 주님도 사실 때 저희와 처지가 비슷했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이 하느님을 눈으로 보거나 귀로 하느님 말씀을 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희와 차원은 달라도 주님도 아버지 하느님을 믿으셨을 겁니다. 주님의 삶은 당신의 믿음과 아버지를 향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 보여줍니다. 세 분은 정말 서로 사랑하십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저희가 그 사랑 안으로 들어가게 이끌어주소서. 아멘.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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