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1월 17일(연중 제2주일) 듣기
하느님은 부르시고 우리는 응답한다. 하느님은 세상 모든 것을 통해서 작은 육체 안에 있는 나를 부르시고 말씀하신다. 귀로 들을 수 있는 말씀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환시로 하느님을 뵙고 말씀을 듣는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거 모른다. 보인다고 해도 피곤한 탓이려니 할 거다. 하느님의 말씀은 나의 지성소인 양심 안에 있다. 그곳을 뭉뚱그려 마음이라고 말하지만, 그보다 좀 더 깊은 곳이다. 감정의 방을 지나 더 깊은 곳에 있다.
그곳이 아프거나 평화로움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다.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그곳이 찔리듯 아프고, 순종하면 평화롭다. 하지만 그곳이 평화롭다고 언제나 하느님의 말씀대로 사는 건 아니다.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지적인 배움도 물론이고 무엇보다 기도가 절실하다. 기도는 수련이다. 하느님 말씀을 알아듣는 훈련이다. 그렇게 우리는 성장한다. 성장과 성숙은 양심이 진리를 향해 더 열려 있고 더 말랑말랑 연해진다는 뜻인 것 같다. 그래서 그곳이 더 많이 그리고 자주 아프게 된다.
하느님 말씀이 진리다.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요한 8,32). 예수님이 진리를 가르쳐주셨고 우리가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길을 보여주셨다.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려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질기고 질긴 이기심과 내 의지의 올가미에서 풀려날 거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완전한 사랑이 진리다.
하느님 말씀은 선택과 실천을 요구한다. 행동하게 한다. 말씀은 아주 간단하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건 간단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말로만 사랑한다. 주님의 제자라면서 십자가는 짊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맨날 그 자리에서 뱅뱅 돌기만 하고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성장하지 않으니 성숙과 완전해지는 길이 아주 멀다. 주님은 또 부르신다. 서로 사랑하라고 당부하시면서 내 의지는 버리고 내 십자가를 지고 당신 뒤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신다.
주님, 주님은 쉽게 말씀하셨지만 그대로 살기에 세상은 많이 복잡합니다. 저희에겐 식별이 필요합니다. 비판과 비난이 아니라 식별이 필요합니다. 심판은 주님의 몫이니 저희는 언제나 사랑의 길만을 탐색합니다. 기다려야 하는지, 인내해야 하는지, 말해야 하는 지, 외쳐야 하는지 식별합니다.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 3,19).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이 이름으로 어머니를 부르며 마음은 조용해지고 평화를 되찾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아드님의 말씀을 알아듣기 쉽게 들려주소서. 아멘.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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