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5일(성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황소처럼
하느님은 해결사가 아니다. 기도하고 매달린다고 모든 어려움이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 대신 하느님은 우리가 낙담하고 포기하지 않는 한 끝까지 도와주신다. 죽기 전에 모세가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 하는 백성들에게 말했던 것처럼 ‘하느님은 우리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신다.’ 그러니 그분의 계명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신명 31,6; 히브 13,5).
하느님의 자녀로서 아버지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감성적인 차원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로 나의 구체적인 생활에서 그 말씀에 합당한 것을 찾고 선택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하느님은 살아계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고 믿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시다(히브 13,8).”
주님의 말씀으로 뜨거워진 가슴이 삶의 현장에서 급격히 식는 것은 현실적인 불이익, 손해, 실패 같은 것들 때문이다. 영화나 소설에서는 착하고 의로운 사람이 많은 고통을 겪다가 마침내 승리하며 헤피엔딩하지만 현실은 그것과 아주 많이 다르다. 거기에 자신의 신념 때문에 가족들이 고통을 받으면 그 신념은 아집과 고집 혹은 고지식함이라고 비난을 받는다. 하느님은 순교자들의 죽음을 막지 못하셨고, 세례자 요한의 허망한 죽음도 그리고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도 막지 못하셨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을 비롯해 요한도 예수님도 모두 범법자로 벌을 받아 사형을 당했다고 역사 책에 기록되어 있을 거다. 그러나 하느님의 책에는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았고 당신께 맞갖은 딸과 아들이라고(지혜 3,5)’ 완전히 다르게 적힌다.
예수님은 당신의 운명을 아셨다. 그분은 비난과 음모를 피하지 않으셨고 그들과 타협하지도 않으셨다. 황소처럼 앞으로 밀고 나가셨다. 그리고 알고 있던 대로 그분은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으로 생을 마치셨다. 세례자 요한은 불의한 이들의 손에 죽음으로써 바로 뒤에 계신 구세주 그리스도의 생을 예언했다. 그 후 많은 예수님의 친구들도 그와 비슷하게 살다 떠났다. 그분들의 삶은 투쟁이 아니라 순종이었다. 진리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절친 예수님과의 우정을 지킨 삶이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하느님의 말씀은 전단지의 광고 문구 정도로 여기며 세속의 가치만 따르는 사람, 다른 하나는 하느님의 말씀 때문에 내적 갈등을 겪는 사람이다. 그리고 가끔 그 갈등을 넘어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님과의 우정을 선택한 사람들을 만난다.
예수님, 다 내놔서 잃을 것이 없는 데도 이렇게 우물쭈물하고, 또 예전에 하던 대로 하려고 합니다. 뼛속까지 죄인이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닙니다. 그러니 주님의 십자가 희생 제사가 없었다면 저에겐 아무런 희망이 없을 뻔했습니다. 얼마 못가 또 넘어질 것을 알면서도 다시 같은 결심을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알려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의 무한함을 믿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주님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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