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나해 2월 11일 하나의 인류, 하나인 신앙(+MP3)

나해 2월 11일 하나의 인류, 하나인 신앙

 

학생 때 대종교 관련 동아리 게시물에 그리스도교는 서양종교라는 문구를 읽고 충격을 받았다. 그때만 해도 단일민족, 배달민족이라는 자긍심이 주입되어 있고 반공 멸공이 민족적 과제인 것처럼 알고 있던 시절이었다. 국산품 사용이 애국이고 윤리적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내가 서양종교에 속해 있으니 혼란스러웠다.

 

예수님의 국적은 유다인이셨다. 그 나라 언어를 쓰고 그 민족의 문화와 풍습 속에서 자라셨다. 이방인을 개와 강아지로 여기던 문화도 배우셨다. 마귀 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간청하는 이방인 어머니에게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마르 7,27).” 하고 말씀하셨다. 지금 기준으로 예수님은 그 여인의 인격을 모독하셨고, 그분을 구세주로 믿는 우리 눈을 의심하게 하는 말씀이다. 이방인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려고 그러셨다는 해설은 구차한 변명처럼 들린다. 왜냐하면 이는 예수님이 우리와 같이 한계를 지닌 한 사람이셨고 또 그분을 친근하게 느끼게 하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만국공통어가 있다. 친절, 배려, 도움, 미소 등이다. 한 때 ‘어글리 코리안’이란 말이 유행하며 한국인의 배타적인 성향을 반성하자는 목소리들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외침은 겸손해지고, 더 나아가 너와 나는 다르지 않다는 말로 들린다.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이니 서로 따뜻하게 사랑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스도교적인 해석이다. 이제는 나의 믿음이 서양문화라는 주장에 흔들리지 않는다. 하느님은 그 민족을 선택하셨으니 거기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 나의 믿음은 서양 것이 아니라 인류 모두의 것이다.

 

너와 나는 다르다. 다름은 대립이 아니라 하느님 창조의 풍요로움이며 서로 돕고 살라는 하느님의 또 다른 형태의 계명이다. 여자를 창조하신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창세 2,18). 동물은 인간의 협력자가 될 수 없었다. 오직 사람만이 사람의 협력자다. 그러니 비판과 토론은 좋지만, 비난 비방 험담은 버려야 한다.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말도 마음을 열고 들어야 한다. 그래야 더 좋은 세상을 만들거나, 혹은 우리가 잃어버린 세상을 되찾을 수 있다. 매우 이상적인 생각인 줄 안다. 하지만 이것이 환상은 아니다. 환상이라면 나의 믿음은 헛된 것이다.

 

예수님, 복음서는 신앙의 눈으로 보아야 할 책이지만 거기서도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한 사람이었음을 발견할 때마다 주님을 가깝게 느낍니다. 제가 느끼는 것보다 주님은 제게 더 가까이 그리고 더 낮은 곳에 계십니다. 주님께 더 가까이 내려갑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어머니의 겸손을 가르쳐주소서. 아멘.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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